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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부문] 가작 ‘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키트’ 이준호

2017-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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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에 깼다.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 놔도 전혀 수면의 질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잠귀가 어두운 대철씨에게는 유별난 일이다. 그 소리는 확실히 달랐다. 천장에서 나는 소음의 유형은 다양하지 않다. 바스락바스락, 후다다다닥, 박박박박. 그 음의 날카로움과 음량의 고저 강약에 따라 집 짓기가 귀찮은 철새, 청설모, 시궁쥐나 생쥐, 호기심 많은 고양이, 무단 침입한 라쿤, 그리고 가끔 길 잃은 스컹크 등의 소행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익숙한 소음은 아무리 밤새도록 들려와도 대철씨의 곤한 잠을 깨울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심야에 가끔 천정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년간의 지하 방 생활로 나름 천정 소음에 일가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대철씨도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혹은 어쩌면 비로소 대철씨가 3년만에 천정 소음 분석에 일가를 이뤘기 때문에 이 이상한 소리를 일반적인 소음과 분리해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무거운 것을 끄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간헐적으로 약하게 쿵쿵하는 충격파도 동반하고 있으며, 주로 천정 중앙을 가로질러 양 귀퉁이로 질주하는 설치류와는 달리 소리의 행적이 일관되지 못하고 모종의 궤적을 그리기는 하나 그 진행 방향에 목적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철씨는 토론토 북쪽의 도심, 영 스트릿과 핀치 애비뉴 교차로 근처 단층 주택의 지하 월셋방에 3년째 살고 있다. 아니 완전한 지하는 아니다. 천정과 맞닿은 곳에 한자 정도 높이의 조그만 여닫이 창문이 있는데 이 창문은 도로변에 면해 있다. 방 바닥에서 천정 까지를 2.3미터 라고 어림한다면 약 87 퍼센트만 온전한 지하이고, 나머지 13퍼센트는 지상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방을 굳이 반 지하라고 부르는데 대철씨는 그 정도까지 우길 생각은 없고 다만 이방은 순도 100%의 지하방은 아니라고 믿는다. 천정과 붙어있는 단 하나 있는 창문은 이 방이 단순히 지하방이라 불리기에는 온당치 못하다는 위상을 규정해 줄 뿐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지상과 면해 있는 부분이 겨우 한자 남짓하지만, 그곳을 통해 지상의 신선한 공기를 상시 공급받을 수 있고, 혹시라도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는 게으른 날이면 창문을 통해 용케 들어오는 햇살을 비스듬히 마주하게 되는 행운도 가끔 누릴 수 있다.

집주인 할머니는 위층에 살면서 지하층 전용의 출입구를 따로 내고, 방 세 개, 공동 욕실과 주방을 만들어 세를 놓고 있는데, 그 중 대철씨 방이 출입구와 제일 가깝고 또 사실 큰 차이는 없지만, 엄밀히 측량해보면 지하 방 세 개중에서 가장 크다. 주인 할머니는 이 방이 셋 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쾌적한 방이라 하고 옆에 사람도 없는데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서는 이방은 아무에게나 내주는 방이 아니라 했다. 나머지 방의 입주자들은 대부분 빠듯한 생활비를 아끼려는 어학 연수생이나 단기 유학생들이었는데, 처음 1년간은 그래도 마주치면 살갑게 인사도 하고, 공휴일이 낀 긴 휴일이면 삼겹살과 김치를 넉넉히 마련해서 셋 모두 둘러 앉아 구워 먹기도 했었다. 자연스레 캐나다에 온 지는 얼마나 됐고, 지금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어 보기도 하고, 혹시 무슨 어려움이라도 듣게 되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조언도 해주었지만, 대철씨와는 달리 다른 방 세입자들이 서너 달이 멀다 하고 바뀌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이제는 어쩌다 입구나 공동 화장실 겸 욕실에서 맞닥뜨리면 어색한 침묵의 눈인사만 나누게 되었다. 한집에 살면서도 말 붙일 이웃 하나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대철씨가 나가던 일자리마저 잃고 실업 연금을 타 먹고 살기 시작하면서는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주택임대 사업자가 운영상 가장 주안점을 두어야할 요소는 아무리 세입자의 전출입이 잦더라도 그 간격을 최소화 하여 임대 수입에 큰 공백이 없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가능한한 장기 세입자를 확보하고, 일단 확보된 세입자와의 관계를 최대한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 지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집주인은 절대 간섭하지 않는 무관심 불간섭의 입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느 달부터 인가 지하층에 대철씨만이 유일한 세입자가 되는 경우가 잦아질 무렵 안절부절 하는 주인집 할머니가 안스러워진 대철씨는 교민과 유학생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에 광고글을 올려주었다. ‘지하철 역 부근, 조용한 주택가, 인터넷 제공, 주인집과 별도 출입구’ 이정도면 매력적인 조건이고, 실제로 대철씨가 처음 이 집에 입주를 결심 했을 때의 광고와 다르지 않았다. 월세는 일년에 한번 정도 근처의 다른 월셋방들과 보조를 같이해서 올라가는 모양인데, 최고참이며 모범 세입자인 대철씨에게 만은 삼 년 전 월세 그대로 받고 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주인 할머니로서 쉬운 아량이 아닐 터인데 이쯤 되면 대철씨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하다. 하지만 최근 나머지 두 방은 대철씨의 광고 덕분인지 문의 전화와 보고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도 공실인 채 달포가 넘어가서 대철씨도 조금은 조바심이 난다.

3년전 대철씨에게 이 방을 물려준 이전 세입자에 따르면, 워낙 융자를 많이 끼고 마련한 집인 데다 공실률도 높아서 월세 받아서 모기지 내고,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비용에 소소하게 들어가는 건물 수리비 대기도 빠듯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주인 할머니한테 가족 이야기 절대 묻지 마세요.’ 전 세입자가 갑자기 워낙 굳은 표정으로 신신당부를 하는 바람에 대철씨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할머니 자식들은 어디서 살고 있느냐, 손자나 손녀는 있느냐,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느냐 는 따위의 한국식으로 따지면 거의 예의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요즘같이 대철씨의 형편이 좋지 않은 때에 주인 할머니와의 관계의 심화는 대철씨도 원치 않는 바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인간의 발자국 소리였다. 대철씨는 오늘은 작정을 하고 의자를 밟고 올라가 귀를 천정에 바짝 대고 온 정신을 집중했고, 그 소리가 어쩌면 두발을 가진 짐승이나 인간의 발소리이며, 평소처럼 천정의 빈 공간이 아니라 주인집의 거실 이나 부엌 쪽 바닥에서 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하 방 생활을 삼 년 정도 하면 위층에서 들려오는 주인 할머니의 발걸음 정도는 구분해 낼 수 있는 귀가 생긴다. 적어도 대철씨가 경험한 바 로는 지난 3년간 새벽 2시에 이 정도로 특이한 발걸음 소리를 들려주는 거주자는 위층엔 없었다. 느린 발자국 소리는 반시간 가량 위층 공간을 소요하다가 사라졌다. 대철씨의 심장은 쿵쿵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것이 차라리 생쥐나 심지어 스컹크라고 해도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소리의 주인공이 두발을 가졌을 지 모른다는 추론이 대철씨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살다 보면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맞닥뜨리게 되고, 또 초인적인 용기를 내서 그 위기를 극복해내기도 한다. 대철씨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한참을 침대에서 전전반측하다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 그날 대철씨는 인간이 좀비에게 점령당한 세상에 가게 되었고 그래서 좀비들에게 한없이 쫓기는 꿈을 꿨다. 거리는 인간의 살점을 찾아 밤낮없이 비틀비틀 길거리를 헤매는 좀비로 가득 찼고 대철씨가 지하에 숨어 있는 집에도 들이 닥쳤다. 좀비는 주인집을 먼저 방문했는데 1층 거실에서 바로 지하 방 천정부분을 지날 때 그동안 대철씨를 괴롭힌 그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철씨는 쫓기는 마음에도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어 약간 깨달음의 기쁨 같은 것을 느꼈다. 이윽고 드디어는 좀비 여럿이 대철씨 방 앞까지 와서는 쾅쾅쾅 쾅쾅쾅 무자비하게 방문을 두드렸다. 대철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주인 할머니는 벌써 좀비에게 당했겠지. 아니 어쩌면 저 무리들을 이끌고 지하로 내려왔을 거야. 좀비는 후각과 청각에 강하다는데 대철씨는 자기전에 샤워를 하지 않은 것에 후회했다. 좀비들이 대철씨의 숨소리조차 듣지 못하도록 담요에 입을 파묻고 고개를 숙였다. 빠지직. 방문이 깨어지고 좀비가 우루루 방문 안을 들이닥침과 동시에 대철씨는 꿈에서 깼다.

그렇구나! 직립한 인간이 두발로 내는 소리 같지만 걷는다기 보다는 두발로 기어가는 듯 목적 없이 축 늘어진 그 소리는 바로 좀비가 내는 것이라는 결론은 너무나 완벽해서 대철씨는 어떤 다른 가설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집에 다른 세입자들이 들어오지 않는 까닭도 이 집이 이미 좀비에게 점령당한 기운을 느껴서 였는지 모른다. 대철씨는 이제부터 당면한 위험을 직시하고 좀비의 공격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형태의 세상으로부터의 위험에 대비하기로 결심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 아니라 위험에 대해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어 전선을 형성하여 일단 유사시 어떠한 공격에도 방어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 대철씨는 출입구 문짝의 15퍼센트를 구성하는 반투명 유리창 부분에 대해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다. 밖에서 유리를 깨고 억지로 몸을 들이밀면, 다소 무리가 없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부에서 방안으로 침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유리창이 좀비의 주먹에 깨어져 안으로 날아 들어와 대철씨의 몸에 박힐 위험도 감안해야 한다. 뉴스에 보니까 플로리다 쪽에 허리케인이 상륙할 때 테이프를 창문에 대각선으로 교차해서 붙이던데 그것을 응용하기로 했다. 근처 달러 마트로 달려가서 공업용 덕트 테이프를 한 묶음 샀다. 전기 테이프나 유리 테이프는 그 강도에 있어서 덕트 테이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비용 부담이 되더라도 덕트 테이프 3개들이 한 묶음이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유리창에 붙이고 남은 덕트 테이프는 좀비에 쫓기거나 할 때 임시방편으로 무엇을 고정한다 거나 할 때 여러 모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대철씨는 테이프를 대각선이 아니라 십자로 붙였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좀비를 쫓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힘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았다.

대철씨는 이제부터 주인 할머니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응답 할 것인가 고민에 휩싸였다. 만약 주인 할머니가 좀비가 돼 버렸다면 그래서 아무 방호 없이 문을 열어 준다면 그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철씨는 주인 할머니가 어떤 사무가 있으면 이메일이나 문자로 먼저 통신하라고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주인 할머니가 좀비에게 지하실까지 쫓겨와서 대철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만약 좀비가 거의 인간과 동일한 행태를 가지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좀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주인 할머니가 아직 감염되기 전이라면 대철씨가 주인 할머니의 구조 요청을 거절함으로 주인 할머니를 좀비로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되는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최소한 대철씨가 좀비의 공격을 받게 될 확률은 낮아지므로, 매정하지만 주인 할머니로부터의 일체의 도움 요청이나 접촉을 거절해야만 한다. 그것은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인간 세상은 냉정하게 살아 가야 한다. 늘 대철씨가 지나치게 무르고 마음이 여리다고 여겼던 아버지의 질책이 떠올랐다. 특히 좀비가 준동하는 세상이 되면 더 각박해질 것이 뻔한데 왜 대철씨만 생명을 무릅쓰고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만 하나.

철통 같은 닥트 테이프를 뚫고 좀비가 방안으로 들어 왔을 때의 계획도 준비했다. 대철씨는 우선 책상을 이용한 안전 공간을 구상했다. 좀비가 들어오면 책상을 옆으로 눕혀 책상 다리를 벽에다 붙이고 버티기로 했다. 책상 상판이 좀비를 일차적으로 막아 줄 것이고 튼튼한 책상다리가 벽을 받쳐주니 최소한 일 미터 정도는 좀비와의 간격을 유지 할 수 있다. 혹시 모르니 우산도 끝이 뾰족하고 튼튼한 것으로 구해다 두어 개쯤 벽에다 걸어놔야겠다. 책상은 언제나 옆으로 눕힐 수 있도록 책상 위에는 아무 것도 놓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출력해 놓은 구직 광고들, 몇 번이나 고쳐 쓴 이력서들, 간신히 빈칸을 메꾸어 놓은 면접 예상 질문지들과 답안들을 다 치워버렸다. 좀비가 쳐들어왔는데 이런 것들이 와장창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책상위의 물건들을 깨끗이 치우고 책상을 눕혀 놓은 후 벽에 웅크려 앉은 대철씨는 태중의 태아처럼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몸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로 하자 공포에 질렸던 마음에 다소간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대철씨는 잘 숨어 있기만 한다면 지하방은 좀비를 피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했다. 대철씨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전 지구적 좀비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구해줄 수 있을까? 어디 보자. 방의 크기가 가로 2미터에 세로 3미터 정도 되니까, 일 인당 일 제곱 미터의 개인 공간을 감안하면 최소 다섯 명 정도는 이곳에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서 열심히 다녔던 도서관의 칸막이가 떠올랐다. 밤에 잘 때 나란히 누우면 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대철씨는 자신이 밤에 잘 때 코를 고는지 안 고는지 스스로는 잘 모르니까 만일을 위해, 그러면 도서관처럼 칸막이를 만들어서, 나란히 그 칸막이 속에 머리만 넣고 자면 그런대로 프라이버시도 해결될 것 같다. 코를 골거나 입을 벌리고 자도 칸막이 너머의 일이니 민망함이 좀 덜하겠지.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감격적이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안전한 세상이 오면 모두들 대철씨가 그들의 생명을 지켜준 것에 감사하겠지. 어쩌면 신문에도 나고 방송국 토크쇼에 출연할지도 모른다. 대철씨는 그때 지을 표정과 말할 때의 톤에 대해 생각해본다. 너무 순간적인 매스미디어의 주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시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지사적이거나 맹목적 신념형의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저는 당연히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라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또 그렇게 서로 인간성을 잃지 않고 같이 힘을 합쳐 나가는 모습이야 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철씨는 좀비 아포칼립스 이전부터도 자신이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어떡할 거냐?” 아버지의 음성은 낮고 어떻게 들으면 체념한듯 했다. 근처 도시로 대학을 진학했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했고 집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늦둥이로 어렵게 가진 아들을 싸고 돌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또래보다 한참이나 늦된 아이가 세상에 나가서 겪을 고초가 눈에 선해서 아들을 다그치던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아들은 말문을 닫았고 그나마 둘 사이에서 말을 전해 주던 아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대철씨가 여러 해에 걸쳐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알바를 전전하며 고생해서 모은 돈을 들고 덜컥 캐나다로 떠나겠다고 선언한 그해 겨울,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와 대청 마루에 앉아 하릴없이 누렁이 녀석과 놀고 있을 때 문득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와 대철의 옆에 앉았다.

“우선 캐나다에 가서, 영어도 배우면서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철씨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대철아, 왜 하필이면 그 먼 곳이냐. 게다가 네가 지금 무턱대고 뭘 새로 시작하기에는 모든 것이 좀 늦지 않았느냐?”

아버지의 말은 언제나 옳았으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대철씨는 간신히 우겼다.

“예에. 아버지,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 제가 캐나다 가서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늙으신 대철의 아버지는 더는 대철씨를 추궁하지 않았다. 나란히 앉은 부자의 어깨에 한낮의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대철씨는 누렁이의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어 주었고, 누렁이는 입을 벌리고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었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반쯤 감았으며,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옆에서 누렁이를 쓰다듬는 대철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총각…… 혹시 있는가잉?”

주인 할머니다. 이제 대철씨도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니 제발 총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틈날 때마다 부탁해 보지만 주인 할머니는 요지부동 언제나 총각을 고집한다. 장가 안 갔으면 무조건 총각이란다. 대철씨는 주인 할머니가 총각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게 겸연쩍고 거북하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반항도 겸해서 한 육십 살까지 혼자 살아볼까 생각해 본다. 설마 나이가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그때도 장가 안 갔으니 그것 때문에 총각이라 부르실 건가? 주인 할머니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른답시고 환갑도 넘은 늙은이를 총각이라 부른다면, 그 인지부조화에 심적으로 얼마나 괴로우실까 생각하니 대철씨는 벌써 고소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음성이 더욱 은근 해진다.

“총가아악…… 혹시 있는가잉?”.

“예에. 할머니, 저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 할머니가 이렇게 과도하게 친밀을 가장한 목소리로 방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찾는데, 뻔히 방안에 있으면서도 없는 체 꿈쩍 도 안 하는 다른 세입자의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주인 할머니야 당연히 오랜 경험으로 그런 저차원적 방법을 당연히 간파하고 계시지만, 바로 그것이 연륜이란 것이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속아 주신다. 그리고는 ‘다음에 와야 긋네’ 하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열리지 않는 문에 던져 주시는 그 순간에 마치 저주처럼 밀려드는 죄책감을 다른 세입자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대철씨는 알 수 없다. 대철씨에게 가장 좋은 방을 가장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눈 치우기, 잔디 깎기와 잡초 제거 및 온갖 집안의 고장을 스스로 처리해야하는 단독 주택을 혼자 힘겹게 관리하는 칠순 노인네를, 그게 비록 좀비의 침공 같은 위급한 때일지라도, 외면 할 수 없음을 대철씨는 깨닫는다.

“총각, 다름이 아니고 위에 올라와서 나 좀 쬐끔 도와줘야 쓰것는디.”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대철씨는 그간 단 한 번도 주인집에 가본 적이 없다. 지하층에서 주인 할머니가 사는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세입자들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이며, 대철씨와 주인할머니의 계급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경계선이었다. 오늘 주인 할머니가 자청하여 위층으로 올라올 것을 허락하고 모종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대철씨의 세입자 로서의 지위가 한단계 상승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정도면 대철씨가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한달정도 월세가 밀려도, ‘담 달에 같이 드릴께요’ 정도로 쿨 하게 말하고 넘어가도 어쩌면 괜찮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예, 할머니, 뭐 제가 힘쓸 일이 있나 보죠? 지금 같이 올라가시죠.”

일단 할머니가 사람의 언어를 썼으며 대철씨를 즉각적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건너편 열린 욕실안에 걸려 있는 거울로 흘끗 자신의 모습을 체크한 것으로 대철씨는 할머니가 좀비가 아님을 확신했다. 좀비는 거울을 보는 등의 행위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법이 없다.

3년 만에 위층으로 올라간 대철씨는 할머니가 좀비가 아닌 것이 안심이 됨과 동시에 주인집에 드디어 초대된 것에 대해서 뿌듯한 마음을 가졌으나 겉으로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와 어르신이자 집주인에 대한 당연한 존중의 태도가 그의 음성과 온몸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신중하게 위층으로 향하는 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집에는 지하실 내부에서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철씨가 살았던 3년간 그 계단 끝에 붙어 있는 문은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호기심에 라도 계단 끝까지 올라가 지상으로 향하는 손잡이를 돌려본 적조차 없었다. 그 하얀 문은 언제나 닫혀 있는게 정상이었고 닫혀 있는 그 자체로 주인집과 세입자가 영유하는 공간의 명확한 경계를 의미할 뿐 결코 열려서는 안되는 사회적 약속 같은 것이었다. 주인 할머니도 단 한번도 그 문을 사용해서 지하로 내려 오신 적이 없었고 그래서 번거롭지만, 지하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옆 문을 열고 나와 집 정면에 있는 현관을 향하는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주인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자, 작은 개가 달려와 할머니 뒤에 서 있는 대철씨를 향해 미친 듯이 짖는다. 어찌나 심하게 짖는지 대철씨 팔목 만한 그 개의 작은 몸이 짖는 소리에 심하게 요동치며 꼬리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주인 할머니는 충실한 개를 제지하는 그 어떤 행동도 없이 그냥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대철씨는 머뭇거리며 현관 앞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개는 눈동자가 녹색으로 변할 정도로 계속해서 짖었다. 대철씨는 작은 개의 적개심에 속수무책이었다. 작은 개는 앞다리를 약간 굽힌 채 대철씨가 한걸음이라도 더 발을 집 안으로 들인다면 추호의 자비도 없이 온몸을 던져서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작은 개는 대철씨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대철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작은 개에게 공포심을 내보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해삐 !”

집 안으로 들어간 주인 할머니가 개를 부른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작은 개는 즉시 대철씨를 향한 분노와 위협을 접고 할머니 쪽으로 바라락 달려갔다. 아니 감정이 이렇게 갑자기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문득 대철씨는 지난 겨울 어느 늦은 밤, 장갑 속에 주먹 쥔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크리스티 공원 벤치 앞에 선 채, 창백한 불빛 아래 얼굴을 반 이상 덮은 머플러 안에서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들려온 그녀의 음성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뭐가 안 돼?”

“우리 말야”

“우리가 왜?”

“......”

“우리가 어때서?”

“……”

그렇게 예고 없는 어머니의 부음처럼 그녀는 떠났다. 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와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여 2년을 보낼 때 까지만 해도 대철씨는 자유와 희망에 차 있었다. 한국에서는 나날이 더 고집이 세어지는 아버지와 병중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무직자 김대철이 아닌 그냥 캐나다 대철씨 그 자신으로 살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스펙과 학벌을 따지지 않았고, 대철씨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었다. 대철씨가 칼리지를 졸업하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도, 전공과는 전혀 다른 어느 작은 회사 창고의 입출고 담당 일자리를 가졌을 때 만해도, 그리고 1년도 채 못 넘기고 그 직장을 잃었을 때조차도, 이윽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존재를 알아채기까지. 너와 나는 괜찮은데 왜 ‘우리’는 될 수 없는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떠났다. 한때 티없이 좋아했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 작은 개는 어떻게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날 향해 짖어 대다가도 한순간에 그걸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총각 일로 쪼까 와바”

작은 개가 대철씨를 향한 적개심을 포기하고 주인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니자 임박한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대철씨는 신속히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온몸을 사방에서 급습하는 냄새, 뭐라고 할까, 지독한 악취라고 표현하면 너무 상투적인 것이, 이건 대철씨가 지하방에서 항상 맡는 쿰쿰한 지하 냄새 하고는 다른 차원의 참기 거북한 냄새였기 때문이다. 대철씨의 표정을 읽었을까 주인 할머니는 어색한 웃음을 짓지만, 특별히 말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으니 이곳의 냄새에 따르라는 암묵적인 지시 같았다. 고등어 구이와 청국장을 한달내내 솥에 넣고 쪄낸 듯한, 부엌 쪽에서는 전혀 음식을 하는 기척은 없는데 그냥 집 전체에 스며든 냄새. 그 냄새가 켜켜이 눌어 붙은 거실을 가로질러 할머니가 가리키는 닫힌 방문 앞에 섰다.

“총각, 이 방문 열면…… 암말 말고…… 고리 하나 풀린 거 있을 겨, 고것만 요 뺀찌로 튼실하게 쪼여주고 나오면 쓰것네. 암시랑도 안 혀.”

주인 할머니는 녹슨 펜치를 대철씨에게 내밀었다. 뭔가 그녀의 힘으로 조일 수 없는 것이 방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집안의 괴이한 냄새로 짐작 건대 필시 아무것도 아닌 일 이기는 커녕, 일상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이를테면 좀비 같은 일이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주인 할머니는 열쇠를 꽂아 놓은 방문 손잡이를 돌려 열기 전에 대철씨의 눈을 한번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피곤한 듯한 주인 할머니의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깃들여 있지 않았다. 그 눈동자는 심상한 일을 부탁하는 듯 당황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대철씨가 다가 오자 방문을 안으로 밀어서 열었다. 문을 열자, 아주 잠깐이지만, 대철씨는 눈을 감았고, 맨 처음 밀려오는 악취의 끈끈한 물결에 불현듯 연유를 떠올렸다. 컨덴스드 밀크. 냄새도 농축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거실에 배인 집안의 냄새를 수십 배 수백 배 농축한 질감의 냄새가 습격했다. 그곳에는 한 명의 노인이 온통 비닐로 덮어놓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방안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어처구니없이 작은 텔레비전에는 한인 케이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볼륨은 적당했다. 그 소리는 방안을 싸고도는 침묵을 깰 정도로는 컸고 무슨 내용인지 알아 듣지 못할 정도로는 충분히 작았다. 노인은 우리가 방 안에 들어가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통 텔레비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텔레비전 찰상관이 쏟아내는 이미지 자체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 빛의 크고 작음에는 자극을 받고 있었다. 그의 동공은 좌우로는 움직이지 않은 채 커졌다가 작아졌다만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방안은 온통 비닐로 덮여 있었다. 심지어 사방의 벽 마저도 할아버지의 키가 닿는 곳까지는 비닐로 덧대 져 있고, 방에 깔아 놓은 카펫도 비닐로 감싸져 있었으며, 가구라고는 달랑 혼자 앉을 수 있는 소파와 벽에 걸려있는 작은 텔레비전과 방구석의 비닐이 씌워진 싱글 침대밖에 없었다. 얼이 빠져 있는 대철씨를 향해 주인 할머니는 말없이 방 한편 모서리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허리춤에서부터 나온 나일론 줄이 방을 가로질러 창가 쪽 모서리에 설치된 고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끈의 길이로 보건대 현관문 정도까지 닿을 거리였다. 가까이 가니 끈을 묶어 놓은 고리를 벽에 고정하는 원형 나사가 나무에서 거의 빠져 헐거워져 있었다. 그래서 나사를 박혀 있던 나무 창틀에서 돌려 뽑아내고 다른 자리에 튼튼하게 새로 박아 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철씨는 땀을 뻘뻘 흘렸다. 할아버지가 춥지 않도록 방안의 온도를 많이 올려놓은 모양이다. 악취와 무더움과 캐나다에서 듣는 한인 대상 텔레비전 뉴스 소리의 윙윙거리는 고립감이 방안의 침묵과 버무려진 막막함 속에서 대철씨는 오직 나사를 조이는 일만이 구원의 유일한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주인 할머니는 대철씨가 나사를 다시 박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주인집 작은 개는 얌전히 방밖에 서 있을 뿐 방안에 들어오려고 하지도 할아버지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나사를 다시 조이고 나서야 대철씨는 비로소 노인의 방 입구 쪽 벽면에 붙어있는, 아마 틀림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왔을 액자를 발견했다. 그들의 결혼 사진인 듯 흑백의 20대처럼 보이는 남녀가 양복과 드레스 차림인 채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고 가운데 연단 뒤에는 중후한 백발의 남자가 버티고 있었다. 대철씨는 이 사진 속 20대의 남자가 지금 비닐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과 동일 인물인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찍은 듯 보이는 다른 여러 장의 사진들도 현재 할아버지의 모습과 어떤 연결성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 한가지 연결고리는 할머니의 얼굴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사진 속 앳된 신부 얼굴의 흔적뿐이었다. 다른 사진들을 찬찬히 둘러 볼 여유를 주지 않고 할머니는 서둘러 대철씨를 밖으로 배웅했다. 작은 개는 등을 보이며 나가는 대철씨를 향해 다시 짖지는 않았다.

위험은 예고 없이 닥친다. 대철씨를 곤한 잠에서 깨웠던 이상한 발자국 소리가 어느 날 새벽 문득 지하로 향하는 방문을 발견했다. 느린 발자국은 지난 3년간 그 어느 누구도 단 한번 사용하지 않았던 나무 계단을 밟고 찌지직 빠지직 천천히 한 칸씩 지하로 내려왔다. 대철씨는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문을 향해 웅크린 상태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방문을 잠궜는지 기억이 선명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문을 잠그면 소리가 나서 오히려 주의만 끌게 된다. 발자국 소리는 어느덧 대철씨 방문 앞까지 와서 멎었고, 대철씨는 급한 김에 텔레비전 리모컨이나마 꽉 붙잡았다.

이윽고 단 한번의 노크도 없이 손잡이가 돌아갔고 문이 열렸다. 복도에 켜진 불빛을 뒤로하고 주인집 노인이 서있었다. 노인은 손잡이를 잡은 채 어두운 방 안쪽에 어두커니 리모컨을 잡고 앉아있는 대철씨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이 대철씨를 향했다. 대철씨도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둘의 눈길이 마주쳤다.

“ 여가…… 어디냐?”

노인의 허리춤에 두른 나일론 끈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위층 주인 할머니 집으로 통하는 문안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풀려버린 우주비행사의 우주 공간 유영용 안전 줄 같았다. 또 헐거워져서 풀어진 모양이다. 그 끈의 끝에는 대철씨가 다시 모서리에 박아준 고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는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나선 것이다. 그러고보니 위층에서 지하로 내려오는 문은 애초에 잠긴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노인의 음성은 생각보다는 또렷했고, 그가 길을 또 잃었다는 낭패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어르신, 여기는 어르신 집 지하층입니다.”

노인은 대철씨의 대답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노인은 당신이 숙명처럼 조우해야만 하는 어리둥절함에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것은 노인이 온종일 계속해서 경험해야 할 사소한 방향 상실을 상기시키는 일상적인 자극일 뿐, 대철씨의 대답이 노인의 의사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그의 집안에서 또 한번 길을 잃은 것이다. 이번에는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지하층으로 가는 문을 열어 본 것이다.

“아저씨는 누구여? 여는 왜 이렇게 컴컴혀?”

“저는 요, 할아버지네 지하방에 살고 있는 총각입니다.”

“여가 우리 집이여?”

“예 할아버지 집입니다. 할머니하고 해삐하고 같이 살고 계시잖아요.”

“어어?”

“여기는 지하층인데, 위험하게 어떻게 혼자 내려오셨어요?”

“……”

“여는 무선께 언능 밝은 데로 가자.”

밝은 데로 가자는 노인의 말에 대철씨는 불현듯 어두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너편 열린 욕실 거울이 복도에 켜진 작은 안전등 빛을 반사하며 노인과 마주선 자기 모습을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거울속의 남자가 낯설었다. 문득 3년만에 처음으로 노인의 말처럼 여기가 어둡고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 할아버지, 우리 같이 밝은 데로 올라가요.”

대철씨는 일어나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축축하고 따뜻했다. 노인은 대철씨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둘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대철씨가 거실에 나타났는데도 주인집 작은 개는 조용했다. 할머니가 거실 소파에서 자다가 깨어 어리둥절한 눈으로 대철씨와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 동이 텄는지 아침 햇살이 거실에 들어왔다. 노인은 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철씨는 이제 지하방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향집 대청 마루에 내리쬐던 햇볕이 떠올랐다.

수상소감

점심시간 옆자리에서 흘려 들은 대화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스캇과 마틴 둘다 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키트를 인터넷에서 구입하려했으나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아쉬워 한다. 그들은 진지하게 대체재를 홈디포에서 사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했고, 나는 덕트 테이프야 말로 중요한 물품중의 하나라고 거들기 시작했다. 앞자리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테리사는 좀비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떠냐 제안했다. 그들은 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에 가면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가 있다는데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모든 이가 무서워하며 살게 되겠지. 그러나 두려움의 실체를 직시할수록 우리가 얼마나 근시안적 자기연민과 스스로 창조한 굴레에 빠져 있는지 자각하게 된다.

당연히 스캇과 마틴 그리고 테리사와도 수상의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한국일보 문예공모에 출품을 권유해주신 캐나다 문인협회 김영수 회장님께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도 집필중 글이 신나게 산으로 갈 때 길로 끌고 내려와 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부문] 가작 ‘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키트’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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