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통령 선거는 시작도 하기 전 끝난 것처럼 보였다. 현직인 해리 트루먼이 뉴욕 주지사로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토머스 듀이를 여론 조사에서 이겨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력 일간지였던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은 선거 다음 날 결과를 너무 확신한 나머지 “듀이, 트루먼을 이기다”라는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을 미리 찍어 내보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보를 낸 이 신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트루먼의 사진은 미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작년 대선도 절대 다수의 예측을 비껴갔다.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에 뒤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은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전통적 민주당 강세 지역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건 등지에서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얻은 트럼프가 아슬아슬 하게 승리함으로써 대의원 수에서 앞섰고 그 결과 백악관 행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공화당은 그 여세를 몰아 연방 상하원 다수당 위치를 지켜냈고 이제 워싱턴은 공화당 판이 되는 듯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화당 세상이 온 이상 오바마케어의 운명은 시한부일 것으로 생각했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공화당을 일치단결시킨 이슈 가운데 오바마케어 폐지를 능가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연방 하원은 이루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오바마케어 폐기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6개월이 지난 지금 사실상 폐기된 것은 오바마케어가 아니라 오바마케어 폐기 안이다. 연방 하원은 억지로 폐기안 통과에 성공했지만 공화당 상원의원 4명이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안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상원에서 공화당 의석 수는 52석으로 민주당이 일치된 반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를 통과시키려면 3명 이상이 반대하면 안 된다. 공화당은 애초 오바마케어 폐기 겸 대체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이것이 실패하자 일단 폐기안 먼저 통과시키려 하고 있으나 이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화당이 이처럼 비원에 가깝던 오바마케어 폐지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공화당의 내분이다. 오바마케어의 완전 폐지를 원하는 보수파와 오바마케어는 폐지하되 이미 준 혜택을 뺏을 수는 없다는 온건파의 대립이 양쪽을 만족시키는 대안 마련을 불가능하게 했다. 국민들에게 한 번 준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또 하나는 트럼프의 리더십 부재다. 유세 기간 중 오바마케어 폐지와 더 좋은 건강 보험제 마련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는 취임 후 “건강 보험이 이렇게 복잡한 줄 몰랐다”고 한 마디 한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 보험안 마련에 아무런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부터 전 캠페인 매니저부터 전 국가 안보 보좌관까지 모두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FBI와 특별 검사의 조사를 받는 통에 다른 현안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요즘은 몹시 초조한 듯 특별 검사 해임과 셀프 사면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런 판국에 복잡하기 그지없는 헬스케어 문제가 머리에 들어올 리 없다. 최근 날린 트위터에서 “내 덕에 당선된 공화당 의원들마저 그들의 대통령을 돕기 위해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한 걸 보면 그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헬스케어 개혁에 실패한 공화당은 세제 개혁에 나설 참인 모양인데 이 또한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세제 개혁이야말로 온갖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입법인데 트럼프에게는 이를 조정할 능력이 없다. 오바마케어 폐지에 실패하면서 대대적인 메디케이드 삭감을 통해 얻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예산 절감 효과가 사라진 것도 커다란 장애 요인이다.
주요 입법의 골든타임인 6개월이 지나고 유효표에서 힐러리에게 300만 표나 진 채 특별 검사의 수사를 받으며 지지율 36%로 바닥을 기고 있는 사상 가장 자격 없는 대통령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회생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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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