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꼰대에도 유전자가 있다면

2017-07-15 (토) 12:00:00 이상희 /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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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꼰대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궁금하다. 꼰대도 유전이 될까? 아주 황당하기만 한 생각은 아니다. 유전학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유전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반면 모든 행위는 학습되며 유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현대 유전학의 발달은 두 입장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행위에도 유전자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성격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그런데 꼰대 짓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꼰대 유전자는 남아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꼰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다. 짝이 될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짝짓기에 실패하여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삶에도 재생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없다. 조만간 도태되고야 만다.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도태되지 않은 채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유전자가 계속 유전자 풀에 남아있을 수 있다. 다면발현(pleiotropy)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기능에 관여하는 경우이다. 어떤 유전자가 성장과 짝짓기에 도움이 되는 속성 A에 관여한다고 하자. 그 유전자는 또 다른 속성 B에도 관여하는데, B 속성은 개인의 삶에 해가 된다고 하자. 단, B 속성은 재생산이 끝난 다음 노년에 발현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유년기와 청년기에 이익이 되는 A 속성 때문에 유전자가 계속 살아남고 노년기에 해가 되는 B 속성은 부속물로 발현된다.

다면발현으로 치매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 유전자가 어리고 젊은 시절에 유익한 기능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아포지단백질 엡실론(apolipoprotein epsilon)’ 유전자는 혈액에서 지단백질을 깨끗하게 치우는 기능을 한다. 이 유전자 덕분에 인간은 많은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한편 아포지단백질 엡실론은 두뇌 세포를 변형시켜서 치매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다. 똑같은 유전자가 유년기와 청년기에는 도움이 되고 노년기에는 해가 되는 것이다.

다면발현은 유전자 치료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어떤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애면 그 유전자가 관여하는 다른 순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어서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 조심스럽게 검토해야하는 부분이다.

꼰대라는 유전자 역시 다면발현일 수도 있겠다. 꼰대 행위는 일정 나이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속성이다. 꼰대는 권위적이고, 다른 사람을 강압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독단적이고, 단정적이다. 독단적인 가치 판단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훈계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지적질을 한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꼰대 짓이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사실 젊은 시절에 긍정적으로 평가받던 행위들이 변형된 모습이다. 청년 시절에 기성세대가 저질러 놓은 불의에 굴하지 않고 또박또박 반기를 들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낼 수 있는 패기가 기성세대가 된 다음에는 꼰대 짓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꼰대’라는 유전자는 ‘패기’라는 유전자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그렇다면 꼰대 짓은 중노년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오는 속성으로 앞으로도 계속 만연할까?

꼰대라는 유전자는 없다. 학습된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유전자만큼 막강한 적응력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 도움이 되는 행위는 다른 환경에서는 해가 될 수 있다. 의식 있는 중노년들 중에는 꼰대 짓이 무엇인지 서로 나누고, 어떻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지 다양한 글로 공유하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날의 패기를 되살려서 새로운 행위와 태도에 도전하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이상희 /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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