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점입가경의 검증 청문회

2017-06-23 (금) 여주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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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는 것에 따라 체질도 바뀌고 건강해질 수도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오늘을 어떤 생활태도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내일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내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나의 미래이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장래가 결정된다. 이를 한마디로 영국의 유명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을 성실히 살아서 내일을 빛내라(Light tomorrow with today).”

요즘 이 말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한때 저지른 과오로 고통 받고 있는 정계 인사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좀 더 투명하고 성실하게 살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최근 도덕성 검증을 위한 청문회가 한창이다. 한국은 지난해 말부터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을 중심으로 온갖 청문회, 법정 진술공방이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그 바람이 미국으로 불어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과 관련,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일이 생기면서 이 사건은 전 미국인의 흥밋거리가 되고 있다. CNN은 물론, ABC, CBS, NBC 등 미주요 TV방송들이 내보내는 이 광경에 미국인들은 마치 ‘수퍼보울’을 보는 듯 거의 광기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코미국장에 이어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을 밝힐 핵심인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이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어를 하기도 했다.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사건의 의혹을 뒤흔들만한 새로운 폭탄 발언이 기대된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후보가 등장할 때마다 야당의 송곳 같은 질문과 함께 칼날 같은 검증대 위에서 후보들의 각종 비리가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야당의 공격도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한국 청문회의 단골메뉴는 위장전입, 병역기피, 탈세 등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위장전입’은 한물간 테마가 돼버린 것 같다. 흠집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만연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테마는 ‘음주운전’이 아닐까 싶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청와대가 아예 음주운전 이력을 고백하고 나왔을 정도이다. 청와대는 음주운전이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며 대리 변명까지 해주었다. 그렇다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비논리가 한국의 지금 상식인 것 같아 씁쓸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몰매가 두려워선지 아예 일찍이 음주운전을 고백한 내용의 칼럼을 일전에 기고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나면 인사청문회 개선 방향도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을까. 인구밀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 인재가 없는 것인지, 원칙을 고수하는 인재가 없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내건 화두는 한마디로 적폐청산이다. 그 키워드를 무기로 문재인 정권이 청와대에 입성은 했다, 하지만 국정운영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적임자를 찾다보니 별별 인물이 다 나오고 있다.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너도 나도 청문회에만 올라서면 모두가 정말 먼지투성이니 한국이 어떻게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청문회는 볼 때마다 미국의 수퍼보울이나 워싱턴 정가의 그 어떤 청문회만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우리와 연결된 한국이나 미국이나 검증을 받기 위해 청문회 무대에 올라서는 후보마다 도덕성이 변변치 않은 점이 문제이다. 앞으로 특히 고위직을 원하는 정치인은 뒤늦게 후회 말고 평소 생활을 더 깨끗하고 착실하게 해나가야 후환이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서양속담을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는 훗날 깨닫고, 현자는 처음부터 깨닫는다(What the fool does at last, The wise man does at first).”

<여주영/뉴욕지사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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