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라지는 샤핑몰

2017-06-06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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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는 인류 문명과 역사를 함께 한다. 숲속을 뛰어다니며 사냥하던 시절에야 각자 알아서 먹을 것을 마련해야 했겠지만 농업과 함께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분업이 이뤄진 다음에는 자기가 생산한 물건을 장으로 가지고 와 교환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샤핑몰은 고대 로마 트라얀 포럼에 세워진 트라얀 마켓으로 전해진다. 기원 100년 다마수쿠스의 아폴로도루스가 지었다고 하는 이 상가는 노점상 형태를 탈피해 여러 물건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형태로 근대 샤핑몰의 원조로 불린다.


70~80년대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가 한 도시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샤핑몰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실내에 끝도 없이 진열돼 있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은 당시만 해도 초라한 빈국이었던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한국 샤핑 센터가 오히려 미국을 압도할 정도로 화려하고 현대적이지만.

어쨌든 지난 100년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요 생활 공간 노릇을 해오던 샤핑몰이 이제 죽어가고 있다. 크레디 스위스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샤핑몰의 20~25%가 앞으로 5년내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최소 30%는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가 사라질 지는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줄어든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이유는 물론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샤핑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이다. 이 추세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의류업인데 지금 인터넷 샤핑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의류는 2030년이 되면 35%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 샤핑몰 곳곳을 채우고 있는 의류점은 고객들이 한번 옷을 입어보는 장소로 전락한지 오래 됐다. 옷은 샤핑 센터에서 입어보지만 정작 사는 것은 아마존에서 한다. 같은 옷인데 가격이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미티드, 아메리칸 어패럴, 베베 등은 이미 파산을 신청했고 올해 문닫는 매장만 8,64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애버크롬비&피치가 60개, 칠드런스 플레이스 300개, 크록스 160개, JC 페니 130~140개, 메이시 100개, 라디오 섁 552개, 시어즈와 K마트 150개, 아메리칸 어패럴 104개, 리미티드 250개, 파산이 예상되는 페이리스 슈즈 500개, 웻 실 150개 등이다.

이들의 폐업만으로도 수 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하는데 이중 앵커테넌트 역할을 하고 있는 메이시 등이 나갈 경우 그 몰 전체 고객 수에 영향을 주게 돼 남아 있는 업소들까지 타격을 받게 된다. 거기다 메이시에 물건을 대주던 하도급 업체들의 연쇄 파산도 불가피해 보인다. e커머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될 것이 뻔한데 지금으로서는 이 추세가 바뀌기는커녕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제 샤핑몰이 물건을 파는 시대는 갔고 경험을 파는 곳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80년대 비디오테입이 나오자 사람들은 영화산업은 망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건재하다. HD와 3D 등 고화질 입체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영화 티킷 세일은 2002년 15억8,000만장에서 2015년 13억3,000만 장으로 소폭 줄었지만 티킷 가격 상승과 DVD, 스트리밍 영화 판매로 영화 제작사들의 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일반 소매업소가 죽을 쓰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샤핑몰내 식당들은 번창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요리를 해 먹거나 주문 배달을 시키는 것보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요가 등 자기 개발을 위한 강좌나 마사지 등 서비스도 인터넷으로는 주문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앞으로 당분간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e커머스와 경쟁하기보다는 인터넷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파는 것이 새 시대에서 살아남는 비결인 셈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형식이 바뀔 뿐이다. 변화로 인한 손실을 한탄할 때가 아니라 새 시대에 발맞춰 재빠르게 변신하는 노력이 한인 상인들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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