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국 가서 치과진료 받고 가족과 추억도 쌓고…

2017-03-28 (화) 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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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0달러 신경치료 비용 = 3인 가족 2주간 방콕 여행비

▶ 치료의 고통 관광의 즐거움으로 잊어버리는 효과도‘톡톡’

태국 가서 치과진료 받고 가족과 추억도 쌓고…

프레다 문이 꼬꿋 섬 응암코 리조츠의 방갈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기행문으로 엿보는 ‘의료 관광’

심각한 치통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태국으로‘의료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치아 신경치료를 필요로 하는 친구에게 갓난아기와 프리랜서 배우자가 딸려 있다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여행을 전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경비다. 그러나 지난해 의료목적으로 태국을 다녀온 프레다 문은 신경치료가 필요한 친지들에게 서슴없이 태국행을 추천할 작정이다. 그만큼 그녀의 첫 경험은 긍정적이었다.

프레다의 모험은 지난 12월에 시작됐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그녀는 신경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5,000-6,000달러에 달하는 비용 탓에 선뜻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물거리고 있었다.


슬며시 부아가 치민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해외로 의료 여행을 떠나는 편이 낫겠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방콕의 병원과 클리닉, 호텔 등지로부터 관련 정보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SNS의 놀라운 위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족과 친구들도 태국에서 필링과 크라운, 표백과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녀를 부추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수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유 또한 프레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미국에서 신경치료를 받는데 소요되는 비용 정도면 남편과 딸을 데리고 방콕으로 다목적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영하권을 탈출해 아열대 지역인 방콕에서 신경치료를 받아가며 가족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마음을 굳힌 프레다는 남편 팀이 인터넷을 뒤져 뽑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예산을 짜기 시작했다. 결과는 주변인들의 말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대대적인 치료를 받는다 해도 3인 가족의 15박16일간 여행경비까지 포함해 5,000달러 정도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설사 전체 예산이 몽땅 여행경비로 들어간다 해도 태국 현지의 신경치료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추가부담이 그리 클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의 가족여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모든 조건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남편 팀은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난히 추운 세밑 날씨도 ‘결행’ 결심을 굳히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 프레다는 방콕행 항공권을 구입하고 현지 병원에 연락해 치료일정을 잡았다. 일단 방콕에서 1차 치료를 받은 다음 그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휴양지 꼬꿋으로 이동해 야자수 그늘 아래 펼쳐진 해먹에 누운 채 신선한 코코넛워터를 마시고 바닷물에 발을 적셔가며 회복기간을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첫 며칠은 장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인한 피로감, 이빨치료 등으로 고생스러웠다.

대한항공편으로 13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한 후 서울에서 24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7시간을 날아 방콕에 도착했다. 서울은 꼭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였지만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강풍과 눈을 동반한 서슬퍼런 추위에 그만 넋이 빠지고 말았다. 셀폰으로 날씨를 검색해보니 당시 서울의 기온은 화씨 23도, 방콕의 기온은 100도였다.

급격스런 온도차 탓인지 방콕에 도착한 첫 날 딸 락시가 덜컥 병에 걸렸다. 찌는 듯한 무더위와 극심한 매연, 칭얼대는 아이, 딸과 신경치료를 받은 아내를 돌보느라 쩔쩔매는 남편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상적인 의료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콕에서 3일을 보낸 후 프레다 가족은 캄보디아 국경인근의 동부 전원도시인 트랏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머문 게스트하우스인 아티스츠 플레이스는 정원에 부처 석상과 코끼리 상이 세워져 있었고 웃자란 대나무와 부건벨리아로 빼곡했다. 게스트하우스로 통하는 골목길에는 쟁반에 담긴 심각한 치통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태국으로‘의료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치아 신경치료를 필요로 하는 친구에게 갓난아기와 프리랜서 배우자가 딸려 있다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여행을 전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경비다. 그러나 지난해 의료목적으로 태국을 다녀온 프레다 문은 신경치료가 필요한 친지들에게 서슴없이 태국행을 추천할 작정이다. 그만큼 그녀의 첫 경험은 긍정적이었다.

코코넛 과육이 마치 열병식이라도 하듯 땅바닥에 줄줄이 놓인 채 뜨거운 남국의 햇빛 속에 말라가고 있었다. 트랏은 이국적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하루 20달러에 불과한 숙박비였다.


태국 여행 중 가장 불편한 것은 교통수단이었다. 트랏의 숙소에서 인근 섬 꼬꿋으로 가는 관광선 티켓을 구입하면 택시로 부두까지 태워다 준다. 그들을 픽업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택시는 태국의 지방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썽때우였다. 작은 트럭을 개조해 트럭의 짐칸 위에 양철 지붕을 씌우고 긴 좌석을 양 켠에 설치해 여러 사람이 탈 수 있게 만든 일종의 미니버스다. 안전벨트도 없는 트럭 뒷칸에 걸음마 단계의 아이를 데리고 탄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위험스레 덜컹거리는 차에서 내려 보트로 갈아탄 뒤 45분 가량 타이만의 물살을 시원스레 가르며 달리자 저 멀리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꼬꿋이 물 위에 솟아오른 혹처럼 오도카니 모습을 드러냈다.

관광 가이드의 추천에 따라 프레다 일행은 열두어 채의 오두막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응암코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거의 다듬지 않은 통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오두막집의 벽에는 저마다 촘촘한 대나무발이 걸려 있었고 지붕은 주름진 함석판이었다. 단 한 개의 침실은 풀사이즈 침대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에어컨과 더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5일을 머무르는 동안 프레다는 단 한번도 에어컨과 더운 물이 아쉽지 않았다. 현관에 걸린 해먹에 누우면 푸른 잔디밭과 늘씬한 야자수들, 짙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시원스러웠다. 천국은 아마로 이런 곳일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체류 3일째 되던 날 프레다는 락시를 안고 다시 썽때우에 몸을 실었다. 섬 횡단에 나선 것이다. 꼬꿋의 길은 좁았고 가팔랐다. 경사로를 오를 때마다 썽때우는 노후한 목재 롤러코스터가 굴러가는 듯 삐걱댔고 힘이 부치는 듯 비슬비슬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반면 산길에서 해수면 지점으로 내려올 때는 심하게 털털거렸다. 그러나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목적지인 어촌 아와 야이에서의 만찬은 썽때우 탑승으로 인한 피로감을 씻어주고도 남았다.

수족관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생새우와 이름도 생소한 흰빛 생선은 주문 20분 만에 보랏빛 꽃잎으로 장식된 채 프레다 가족의 앞에 놓여졌다. 가격은 싱하 맥주 한 병을 포함해 20달러였다. 단돈 11달러에 전신 마사지를 받는 것도 별스런 즐거움이었다.
팀은 락시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2016년의 마지막 2주를 그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어린애처럼 칭얼댔다. 하지만 남은 신경치료를 받기 위해 그들은 방콕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은 편안했다. 1인당 25달러의 요금을 내고 쌍동선과 버스를 연계하는 환승 패키지를 이용해 6시간 만에 방콕에 도착했다.

이틀간 2차 신경치료를 마친 방콕의 마지막 밤에 프레다와 팀은 락시를 데리고 야시장을 찾았다. 펄펄 끓는 활기로 가득 찬 야시장에서 아기 문어, 오이스터 머시룸 뎀뿌라와 연어 회로 배를 불린 두 부부는 강변 주점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방콕 작별주’를 마셨다. 언젠가 팀의 이빨이 망가지면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겠다는 다짐과 함께.

<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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