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족등용금지법

2017-03-28 (화)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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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흔적지우기’에 적극 나서며 오바마의 공적이 흐릿해져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패밀리의 국정개입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유대계 사위 제러드 쿠시너를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하면서 ‘연방친족금지법( anti-nepotism rule)’의 논란이 시작됐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남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이후 1967년 제정된 연방 친족등용금지법은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임명을 금지한다. 정부조직법 제3장 임용권에 의하면 ‘친인척은 공무원의 부모, 자녀, 형제자매, 부모의 형제자매, 사촌, 남편, 아내, 장인장모, 사위, 며느리, 처형처제, 처남, 의붓 자녀, 의붓 형제자매, 이복형제이다.’

1977년 지미카터 대통령이 아들을 무보수로 백악관 참모로 임명하자 법무부는 실정법 위반이라 했으나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 대표로 활동한 일은 1993년 연방항소법원에서 친족등용금지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판결을 했다. 내각에서 월급 받고 일하지 않았으므로 힐러리는 공무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러드 쿠시너는 백악관은 정부기관이 아니므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적용시키고 있다.


최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의하면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은 2020년 재선을 노린 지지자 그룹 트위터에 정치, 사업과 관련된 글을 계속 올리고 있는 가하면 지난 11일 공화당 모금행사에 참여하고 공직 관련 인사를 추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21일에는 맏딸 이방카가 백악관에 책상을 들여놓았다. 공식 직함 없이 트럼프 정부에 광범위한 조언을 하는 자문역을 맡아 백악관 보좌진의 업무공간인 웨스트 윙에 사무실을 얻었고 기밀취급 인가는 물론 정부 제공 통신장비도 받을 예정이라 한다.

아들이나 사위나 딸이나 모두 비즈니스를 갖고 있는데 이들이 글로벌 부동산, 호텔, 패션사업에 아버지의 권력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백악관 직원들은 대통령, 소통령이 여러 명이라 누구의 눈치를 가장 먼저 볼 것인가, 윤리적으로도 납득이 안 된다.

현대에 들어서도 가족이 다스리는 나라가 몇 있긴 했으나 별로 흥한 경우가 없었다.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세 번째 부인 이사벨 마르티에스 페론은 1973년 남편이 대통령이 되자 부통령이 되었고 1974년 남편의 사망이후로 대통령직(1974~76년)을 승계했으나 경제파탄, 정치적 혼란, 군부 쿠데타로 1976년 축출되어 스페인으로 망명했었다.

지난 2월21일에는 카스피해 석유부국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는 제1부통령으로 자신의 아내 메흐리반 알리예바를 임명했다. 제1부통령은 대통령 유고시 권한대행을 한다. 대통령의 처가인 메흐리반 가문은 은행, 보험, 건설 등 그 나라의 알짜배기 비즈니스를 모두 거머쥐고 있다.

이러한 권력 세습은 보통 후진국형으로 봉건시대에나 있을법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전문가 조언이나 여론 조사기관보다 자신의 즉흥적인 기분에 의해 결정 하고 거래, 협상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전문가의 말보다는 가족의 말을 우선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 성종시대인 1476년 종친들의 관료등용을 법률로 금지시켜 능력 있는 왕족의 조정 진출을 막았고 현재도 친족등용금지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킨 ‘최순실 국정농단’이 일어났다.

대통령 가족들이 너도 나도 책상을 백악관에 들여놓고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한다고 하니 최강선진국 미국이 갑자기 후진국으로 후퇴한 것 같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 달 열리는 청년대회를 위한 영상메시지에서 “ SNS 가짜 인생을 뿌리치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호소했다.

현재 트럼프는 트위터에 올린 ‘오바마 도청’이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고, 두 아들은 사업, 정치 얘기를 트위터에 올려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친족등용금지법을 백악관까지 적용시키지 못한다면 트럼프 가족들이여, 제발 트위터라도 그만 두시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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