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책 한 권씩1년 동안 읽거나, 책9권을 읽고 3편의 영화를 보라. 그리고 읽고 본 책과 영화에 관해 독후감과 감상문을 써서 부모에게 사인을 받아 제출하라.”
버지니아주에 있는 흑인학교 애슈번 건물에 인종차별, 유대인경멸, 독일나치의 문양, 외설그림, 백인파워 문구 등으로 낙서를 했다가 체포된 청소년5명에게 최근에 내린 법원의 판결이다.
법원은 이외에 청소년5명에게 그들의 낙서가 흑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소수민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차별금지법과 관련서적을 참고하여 에세이를 쓰도록 했고, 그 임무를 성실하게 이행시키기 위해 보호 관찰관이 점검하도록 했다. 또한 유대인학살 박물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방문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과 미국거주 일본인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했다.
역사적 아픔을 느끼도록 처벌받은 청소년들에게 법원은 책35권, <신들러스 리스트> <노예12년> 등을 포함한 영화14편을 제시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다른 인간 때문에 겪는 고통, 분열, 희망을 다루고 있다. 리스트에 올려진 책 가운데,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회고한 위젤의 <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청소년의 우정을 통해 그린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흑인ㆍ 장애인처럼 소외되거나 약한 처지에 있는 자를 차별ㆍ 배척하는 사회를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비판하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2차 대전 후 혼란과 혼동의 시대를 무기력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치열하고 철저하게 사는 삶의 소망을 보여주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좋은 예다.
낙서로 체포 당한 5명은 모두16, 17세 남자 청소년들이다. 이처럼 10대 남자들이 어처구니 없는 행각을 벌이는 이유는 이성적, 합리적인 생각을 담당한 두뇌의 전전두엽 성장이 느리다는 것으로 뇌신경학자들은 설명한다. 질풍노도시기로 불리는10대 시절은 이성 아닌 감정이 지배한다. 남에게 들은 칭찬 한마디로 진로를 바꾸고, 꾸중 한마디로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던진다. 또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난폭운전을 하며“나도 너처럼”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른의 눈에는 괴물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괴물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즉, 오만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칼비노는“책을 읽는 이유는 인간내면의 오만과 싸우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5명이 법원에서 제시한 소설을 진솔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나도 독일의 나치처럼 무자비했구나, 나도 두렵고 비겁했기에 친구의 위험을 외면했구나, 나도 흑인, 장애인을 차별했구나, 나도 무기력하게 살았구나 라고 느낄 것이다. 한마디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로 보일 수 있겠구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감정이입의 과정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남의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 즉, 자신의 오만을 인정하고 오만과 싸움을 벌이게 하는 것이 소설의 파워다.
버지니아주의 법원 판결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5명의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쉽다. 편견ㆍ차별ㆍ배척 등으로 점철된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35권의 책을 필독서로 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오만과 싸울 것을 명령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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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홍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