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돌 격세지감

2017-02-21 (화) 이현주 / 주부
작게 크게
심리학 용어 중 ‘라포’(rapport)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연구 혹은 관심 대상과의 신뢰와 친밀감을 전제로 한 공감대 형성을 의미한다. 나는 갓 십대를 벗어난 여대생 시절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과외공부를 가르쳤다. ‘십대 소녀’라는 종족과 소통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 그룹들을 공부했다. 멤버들의 생일, 팬클럽 이름,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 기타 등등. 이런 눈물겨운 노력 덕인지 아이들 성적은 올랐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명 걸그룹 멤버 이야기가 나왔다. 과외 하던 시절이 생각나 검색해 보니 2001년생이었다. 2005년 최고 인기였던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이 나와 동갑인 1986년생인데 2001년생이라니. 오랜만에 한국에 계신 엄마와 통화하며 요즘 애들이랑 세대차이 느낀다고 한탄했더니 “놀고 있네”라고 하신다. 저렇게 어린 친구에게 핫팬츠를 입혀서 춤추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열을 냈더니 남편이 “꼰대 같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꼰대가 맞다. 세상 변하는 게 너무 빠르고 정신없어 꼴 보기 싫다고 뉴스도 잘 안 본다.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1818년에 나왔고, 70대의 도널드 트럼프도 매일 하는 트위터에 가입해본 적도 없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세계와의 라포를 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젠가 2017년생 아이돌이 나와도 의연하고 싶으니까.

<이현주 / 주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