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의 충격이 얼마나 깊었으면 영롱하던 눈빛은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 있는지 심연의 밑바닥에 숨겨 둔 눈빛을 읽으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그 노력이 허사임을 깨닫고, 눈시울을 적신다.
9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조용히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남편을 깨우러 가니 평소 때 하던 아침인사도 없이 어느새 나갔을까.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구급차가 와 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예감이 이상해서 빨리 뛰어 내려가 보니, 같은 빌딩에 사는 래리가 아무래도 당신 남편 같다고 한다. 구급차 뒤를 돌아가니 주차장 모서리에 큰 돌이 깔려 있는 곳에서 넘어진 듯 이마를 중심으로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어 구급차에 싣기 전이라 땅에 앉아,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함께 구급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마취를 세 번이나 추가하면서 필요한 모든 검사를 마치고 찢어진 이마를 봉합, 약 바르고 반창고 붕대 머리에 감고 파상풍, 디프테리아 예방주사까지 맞고 마취가 완전히 깬 다음, 모두가 지쳐 집으로 돌아 온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사고가 난 후 하룻밤을 조용히 지내고, 화요일이 되었다. 새벽 2시 가까이 눈을 떴다. 옆에서 자던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출입문을 보니 나간 흔적이 있다. 재빨리 일어나 주차장 쪽으로 나가보았다. 움직이는 물체는 없고 키가 유난히 큰 가로등이 사방 구석구석을 비춰 주고 있지만 남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간에 어느 곳을 헤매고 있는가. 잠옷 바람에 신발도 신지 않고 나갔는데… 2시간여를 혼자 찾아 헤매다 지쳐 있는데 핸드폰에 신호가 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남편을 클럽 하우스 앞에서 찾아 지금 구급차에 싣고 있다는 전화였다.
하루 전 다친 이마 얼굴 피도 마르기 전 넘어지면서 또 같은 곳을 찍었으니. 이마를 중심으로 코밑, 양볼, 턱 등등 찰과상이 추가되면서 흐르던 피가 명암을 이뤄가는 남편. 참으로 이상도 하다. 대낮에도 혼자서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한 밤중에 그곳으로 갈 생각이 들었을까. 어제 일어난 일도 기억해 내기 힘든 상황인데, 우리 부부가 함께 잘가던 탁구장이 있던 클럽 하우스(집에서 도보 15분 거리)를 꼭두새벽 혼자서 갈 생각을 했고, 왜 갔을까. 두뇌 속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을까.
아니면 노년의 순애보가 싹 텄을까. 본인은 의식하지 않았으면서 평생의 반쪽을 찾아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강박관념이 되어 발길이 그 곳으로 갔을까. 갔다가 불 꺼진 탁구장에서 나를 찾지 못하자 당황하여 바쁘게 돌아서려다 돌이 깔려 있는 곳에 다리가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닐까. 그 어려운 탱고 스텝을 유연하게 추던 실력은 어디에 밀어 넣어버리고, 몸의 중심을 잃고 하루 전 다친 곳을 미련 없이 또 한 번 찍어 놓았다. 이번에도 병원으로 가서 입원하고 있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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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전 은퇴의사 실버스프링,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