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 근심 걱정 말아라’

2016-09-28 (수)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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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울타리 선교회 나주옥 목사가 보낸 ‘행사후기 손익계산보고’라는 제목의 단체 이메일이었다. “수익은 없지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익계산서를 공개합니다”로 시작한 이 보고서는 순수익금 832.13달러로 끝나 있었다.

지난 7월 초 홈리스 선교를 17년째 하고 있는 나주옥 목사가 나충길 준비위원장, 아주사 퍼시픽 대학 교수 김연주 음악감독과 울타리 선교회 기금모금 음악회 홍보차 인터뷰를 했다. 나충길 위원장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라고요? 진짜 여기서 하시려구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비 시즌이라도 2만 달러가 넘는 대관료에 2,265석의 콘서트홀 채우기도 여간 힘들지 않을텐데 음악회 취지가 ‘기금 모금’이다. 가뜩이나 이 음악회 전후로 한인 음악단체들이 주최하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공연이 줄줄이 잡혀있었다. 빚을 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음악회다. 그러나 5년 전부터 숙원해온 사업이라며 생명보험을 해지해 디즈니홀 대관 예치금으로 납부했다는 나 목사의 반짝이는 눈빛을 대하면서 무사히 음악회가 끝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그리고 두 달 후 날아온 이메일이었다. 손익계산이 나왔다며 첨부한 ‘창립 17주년 모금음악회 결산서’는 수입과 후원금 내역, 지출 내역이 상세히 나열돼 있었다. 수입 항목을 보니 14개 교회 5,200달러, 4개 단체 600달러, 기업체와 의료기관 7,000달러, 개인 후원금 1만7,560달러, 준비위원들의 후원금 8,103.29달러, 티켓 판매대 2만6,286.74달러로 총수입이 6만4,750.11달러였다. 지출 내역은 대관료 2만339.45달러, 출연진 항공료 및 오케스트라 사례 2만3,785달러, 운영경비 1만3,096.51달러, 식비와 숙박료 6,697.02달러로 총지출 6만3,917.98로 돼있었다. 당연히 수익 달성은 못했다. 그러나, 빚을 지지도 않았다. 출연진 중 에버그린 합창단 1만5,000달러의 티켓 판매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단원들이 열심히 티켓을 팔았다(강매했을 지도 모르지만)는 결론이다.

그렇게 200여명의 출연진과 1,500여명의 관객들이 함께 힘을 모아 개최한 음악회의 순수익금이 832.13달러였다. 나 목사의 이메일은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훨씬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일인가도 경험했습니다. 수익없는 손익계산서를 돌아보며 행복의 미소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중략>”로 끝맺고 있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행동했다는 나주옥 목사의 실눈이 그려지는 웃음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힘든 현실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꾹꾹 누르며 살아가는 요즘, 무대포 나 목사의 이메일 한통이 뭔가 해보고 싶은 세상을 그리게 한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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