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퉁소 부는 소녀

2016-09-27 (화) 08:17:51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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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 첼로 캠프를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 한편은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은 쓸쓸했다. 선생들이나 아이들이나 얼마나 재미있게 음악을 배우고 있는지 저렇게 배우는 것이 음악이라면 나 같은 음치라도 얼마든지 음악을 애인처럼 사랑했을 터인데…싶다. 차렷, 경례하는 법조차 배꼽 잡고 웃어가며 배운다.

나는 6.25 둥이다.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6.25 때 가난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어떤지를 골수에 익히며 자란 세대란 소리다. 그러니까 음악이건 나발이건 따위는 신경끄고 자랐다. 내 동생들만 해도 피아노 레슨, 바이올린 레슨 받아 봤지만, 맏이였던 내게는 다 그림의 떡이었다. 뿐 아니라 동생들이 레쓴 받는 걸 보면 선생님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지 겁났다. 까딱하면 야단맞고, 때로는 건반 두드리는 손을 가차 없이 때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예 음악 하면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

손녀딸의 첼로 캠프. 가르치는 선생도 학생도 딱 놀자판 같다.
“금요일 발표회 때 무대에 서면 가장 중요한 게 뭐에요?” 선생이 묻는다.
“절하는 거요.” 애들이 소리친다.
“절은 어떻게 해야 해요?”
“바이올린부보다 더 잘해야 해요.” 첼로 애들의 합창.
“절 할때는 뭐라 외쳐요?”
“로스트로포비치!” 애들은 외치고 모두는 웃어제낀다. 선생들은 만족해 웃고, 둘러선 부모들은 자식이 신통해 웃고, 아이들은 대답 잘 했다 싶어 웃고….
나만 뻣뻣하다. 웃을 줄 모른다. 너무 놀라서. 첼로 배우는 것이 저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저렇게 음악을 사랑놀이하듯 살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워 눈이 시리다.
캠프도 끝나고 여름도 끝자락이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간다. 난 어디로 가지?
구르던 자동차가 어느 상점 앞에 멎는다. 간판에 ‘음악과 예술의 가게’라고 쓰여있다. 내 발이 절로 걸어 들어간다. 저쪽엔 바이얼린, 비올라, 이쪽엔 클라리넷, 플룻…. 오늘의 음악 애호가들이 내일의 애호가들 데리고 오는 곳인가 보다. 악기 연주에 필요한 것들이 가득하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점원이 묻는다.
“구경 좀 해도 되나요?” 우물쭈물 나온 내 답.
“물론이죠.” 아가씨가 방긋 웃는다. “천천히 보세요.”
널려 있는 악기들이 다 나 같은 문외한이 갖고 놀기엔 턱없이 우아, 고상해 보인다. 돌아 나오려다 점원 아가씨한테 물었다.
“혹 퉁소 같은 것은 없어요? 여기 있는 악기들은 다 너무 어려워 보여서요.”
“물론 있죠.” 그녀가 벽에 걸린 퉁소 서너 개 골라 내 앞에 늘어놓았다.
“저, 이것 주세요.” 옛날 아버지가 불었던 대나무 퉁소 비슷하게 생겼다.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이지만. “퉁소 악보도 있나요? 아주 기초적인 악보 있으면 그것도…. 전 하나도 모르거든요.”

그렇게 사 들고 와서 뚜뚜뚜우 소리 내 봤다. 어머나, 내 손과 입에서도 퉁소는 소리를 내네. 얼마나 기특한 지. 밤이 깊어진 것도 모르고, 배고픈 것도 모르고, 뚜뚜뚜우 소리를 내 본다. 하지 않던 짓을 해서 그런지 손가락과 팔에 쥐가 자꾸 난다. 내일 계속 해야지… 하며 자리에 누웠다.
꿈속의 나는 퉁소를 너무 구성지게 잘 불어 만인의 갈채 받는 일곱 살의 소녀. 비록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아니라도, 퉁소면 어때? 좋아라 입 벌리고 아이들처럼 허리 굽혀 꾸벅 절하다 그만 침대맡 탁자에 이마를 박았다. 아아, 아쉬운 나의 꿈이여!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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