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는 순간까지 참아라!

2016-05-14 (토) 12:00:00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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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Sex)이란 참으로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감성 중에 하나다. 섹스로 표현되는 성은 남성과 여성이 있다. 본래 섹스는 종족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통해 자식을 낳아 기르며, 이처럼 섹스를 통해 후손은 이어진다. 인공수정도 있지만 인공수정은 종족보존형태 방법 중 하나인 대체법으로 사용될 뿐이다.

현대적 섹스(Sex)의 의미 안에는 종족보존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아닌, 쾌락의 도구로 사용돼 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인간에겐 두 종류의 본능이 있는데 하나는 식욕이요 또 하나는 성욕이다. 본능의 하나인 식욕에 반해 성적욕구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오고 있다.

며칠 전 뉴욕의 한 중형교회를 담임했던 한인목사가 10대 여학생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기사가 일간지에 실렸다. 목사는 혐의를 부인하며 절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은 일단 회부된 재판과 진실을 통하여 밝혀지겠지만 만에 하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 같다.


수년 전 뉴욕의 대형교회 한인 목사가 여신도들과의 간통사실이 드러나 뉴욕뿐만 아니라 미주와 한국에까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수십 명의 교인을 수천 명의 교회로 일궈낸 목사였다. 그는 교회를 사임했고 또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 개척한 교회에는 교인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후문이다.

열 여자 싫어할 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왜 남자들은 이토록 여자를 좋아할까. 결혼했으면 부인만 좋아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예쁜 여자들이 지나가면 흘끔 흘끔 쳐다보며, 자동차를 타고 가는 남자들은 경적을 울려대는 등 멋있는 여자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게 남자 같으니 타고난 본능도 이정도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취재를 다니면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남자 비구스님들을 만나면 질문하는 것이 있었다. 스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고. 많은 스님들이 성문제를 말한다. 성문제란 성욕을 참아내는 게 가장 힘들다는 거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주는 스님들이 고마웠다. 자신의 본능을 참기 위해 손가락에 불을 지피는 스님들도 있다.

가톨릭 4대 교부 중 하나인 성(Saint) 제롬(Jerome)은 여자의 유혹을 피해 사막으로 달아나 풀뿌리로 목숨을 이어가고 태양에 그슬린 고독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환영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여인에 대한 환영은 남자의 머리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뉴욕의 한 중형교회 담임목사사무실에, 창문을 시원하게 만들어 놓고 목회하고 있는 한인목사가 있다. 밖에서 다 들여다보인다. 왜 이렇게 창문을 만들었냐고 질문을 하니 여성신도들이 찾아 왔을 때 오해의 여지를 없앨 뿐만 아니라 여성신도들과의 상담 중에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있을 서로의 유혹을 방지하기 위해서 라고도 말했다.

지혜로운 목사의 발상인 것 같다. 왜, 목사라고 유혹을 받지 않겠나. 뉴욕엔 수백 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담임 목사실이 밖에서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방은 퍽이나 드물다. 드문 게 아니라 그 교회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성적 악(evil)은 그 싹부터 잘라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욕심이 장성하면 죄가 되니 그렇다.

종족보족을 위한 남•녀 간의 섹스도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한 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성직자들의 성 스캔들,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언제나 없어지려나. 여인은 사랑의 대상이지 결코 성적 노리개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거든 아름답다고만 해라. 왜, 만지고 차지하려 하는가. 남자들이여! 참을 수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참아라!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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