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많은 비가 우리 주위에…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라는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아주 쌀쌀맞게 생긴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숙제 안 해오면 막대기로 무식하게 손등을 내리치는 분이었다. 눈빛만 봐도 요놈은 공부 잘 하는 놈… 저놈은 숙제 안 해오기 딱 알맞게 생긴 놈이라는 것을 갈파할 수 있다는 듯, 야멸차게 생긴 영어 선생님 때문에 영어시간이 무척 싫었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왠지 잘 보이고 싶지도… 또 영어가 하기 싫은 과목이었기에 늘 숙제 안 해간 죄목으로 교무실로 불려가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문제는 꼭 영어 선생님의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같다. 그것은 오히려 영어 자체의 문제였다. 우선 영어의 문장 구조를 자세히 관찰해 보라. 물론 그것은 중학교 꼬마에게서 나온 관찰이었겠지만, 영어야말로 인간의 두뇌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구조를 하고 있다.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주위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문장인데 이해하지 못 할게 뭔가?
사실 주위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문장 표현으로는 It’s raining around 가 문법상으로 맞다. 혹은 The rain is coming down… 즉 비가 주위에 내리고 있다. 혹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데 교과서에는 분명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로 적혀있다. 직역하자면, 비가(The rain is) 비가 오고(raining)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비가 오면 당연한, all around(온누리에)라는 표현까지 삽입해서 말이다.(비가 주위에 내리지 아니면 자기에게만 내릴까) 그러니까 그것은 말도, 언어도 아닌… 즉 뒤죽박죽이 된 말을 무조건 달달 외우라는 뜻이다. 참으로 무식한게 영어로구나. 당시 그렇게 생각했다. (영어 잘하는 놈들은 똑똑한 놈들이 아니야. 그저 달달 외우기 잘하는 놈들이지…)
국어는 늘 점수가 좋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기하(미술)학적인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영어는 분명 만만치 않은 적수… 지금도 (학습차원의)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괴상한 구조를 가진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의 두뇌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그것이 알고 싶은…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요! 세월이 흘러, 그 싫어하던 영어고장에서 살게 될 줄을…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쓰게 되면서 영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편견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요즘 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를 외워본다. 특히 종일… 고독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 It’s raining 혹은 coming down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 얼마나 삭막한 문장이 될뻔했는가? 오히려 고지식한 문법보다는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단 한번의 편법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변모되었는가. 영어가 단지 언어일뿐 아니라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시 누군가 한번쯤 귀뜸해 주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꽤 좋은 영어 시민이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스스로의 회한을 곱씹어 본다.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빡빡머리 중학생의 눈에도… 구령을 외치는 영어선생의 눈에도…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그것은 그저 비가 내리는 소리만이 아니라 고요한 노크… 마음의 창을 두드리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 왠지 비이기도 하고, 쓸쓸한 영혼의 소리 The rain… 비오는 소리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시… 음악이기도 하다.
The rain is raining all around / It falls on field and tree / It rains on the umbrellas here / And on the ships at sea. - Robert Louis Steven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