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주만 공격 74주년... 진주만 행사, 여린 평화의 상징

2015-12-09 (수) 1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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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격 당시의 생존자들은 이제 아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지난 7일 진주만 공격 74주년 기념행사장을 찾았다.

30명도 채 안 되는 진주만 생존자와 2차 세계대전 참전자 55명이 가라앉은 애니조나 전함 맞은편의 킬로 부두(Kilo Pier)에 모여 악몽 같았던 일제의 공격을 되새기고 그것을 이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인들의 끈기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로우 콘터(94세)는 현재까지 살아있는 애리조나 전함 생존자 일곱 명 중 한 명으로 “공격 당시 전사했던 애리조나 전함의 1,177명 전우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는 이어 “5, 60년 전 애리조나 전함 기념관이 처음 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년 여기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굉장히 무겁다”고 심경을 표했다.


진주만 공격 당시 민간인 68명을 포함해 총 2,403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미 해군은 아침행사에 해리 해리스 주니어 제독(태평양 사령부 사령관), 데이비드 케네디(퓰리처 상 수상자)를 포함해 3천 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행사에는 사열, F-22 전투기 두 대의 기념비행, 총례, 영결 나팔식 등이 거행됐다.

1941년 12월 7일, 미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진주만을 폭격한 일제 해군은 당일 188대의 비행기를 파괴하고 약 1,20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해리스 사령관은 행사 도중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 해군의 목표였던 렉싱튼 항공모함에 해군 사병으로 있었다는 말을 하며 진주만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연결고리를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주만 공격을 지휘했던 일본 해군의 야마모토 제독은 미국을 공격할 경우 일본이 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마모토 제독은 당시 일본 수상에게 “결과를 생각하기 말고 싸우라는 명령을 받으면 6개월, 아니 1년은 전장을 휘젓고 다니겠지만 그 다음해에는 (일본의 운명을) 절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었다. 이어 야마모토 제독은 “(일본 수상 당신이) 미일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34년째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일본 종교단의 대표자들은 미국과 일본이 화해하고 “좋은 친구”가 됐다고 했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세계평화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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