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버릇처럼 오래하던 일도 잠시 멈추어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큰일 일수도 있고 작은 일 일수도 있으며, 내가 원해서 일때도 있고 주위상황 때문에 밀려서 일때도 있는데, 어쨌든 일단 마침표를 찍고 나면 시원섭섭한 감회와 아쉬움, 후회가 떠오르고, 끝남으로 인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설레임과 희망, 흥분만큼이나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또한 따르게 마련이다.
어쩌면 이미 마침표를 찍어야 했었는데 기회를 놓쳐버리고 쉼표 조차도 채 찍지 못한채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일들로 마음만 분주할때도 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핑계를 대고 책임전가를 하자면 끝도 없고 기분도 좋지 않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가 책임지고 손수 찍는 삶의 쉼표와 마침표는 찍는 그 순간이 감사와 감회로 채워지는 풍성한 삶으로 되어간다.
Mary Stevenson의 “모래위의 발자욱(Footprints in the Sand)”이라는 시는 저자가 꿈 속에서 바닷가 모래 위를 걷는데 자신의 발자욱 옆에 나란히 새겨진 발자욱을 보고 자신과 동행하는 신의 존재를 깨달은 신앙고백이다. 나란히 가던 두 발자욱이 자신이 어려운 처지를 당할때 마다 한 발자욱만 새겨져 있음을 보고, “제가 지쳐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발자욱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저를 두고 어디에 가셨었습니까?”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신에게 한다. 그때에 신은 “내 사랑하는 딸아, 네가 지쳐서 걷기 힘들 때마다 내가 너를 안고 걸었음을 모르느냐?”는 답을 주셨다.
이 시를 읽고 감명을 받은 Mark Littleton은 이 시의 후편 처럼 쓴 글에서 모래 위의 나란히 가던 두 발자욱이 마구 뒤 섞여진 것은 어찌된 일인지 신에게 물으니, “그것은 너와 내가 함께 춤을 추었던 때였다”라고 하셨다는 고백을 하였다.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몸과 마음과 물질을 나누고 베풀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때에 생명을 주신 이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자녀로서의 특권이 주어진 모습일 것이다.
요즈음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서 푸대접과 생명의 위험을 당하고 있는 반면, 독일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는 기사와 사진들을 보며, 환영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그들에게 신은 춤을 함께 추자고 손을 내미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서의 생의 마침표는 창조주가 찍어 주실것이지만 그 날까지 나와 늘 동행하신 신의 발자욱이 내 발자욱 옆에 나란히 있었음을 볼 수 있음은 축복이다.
이제 나이가 좀 들고보니 마침표를 찍는 결정을 하기가 망서려져 쉼표를 찍자니 그것 또한 맘에 드는 결정이 아니여서 그냥 … 하고 내어 두는 경우가 있다. 내 자신의 입장과 소신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온 이들의 기대를 고려해야 하는 의무랄까?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비중을 두어야 할때가 가족관계에서는 물론, 봉사활동, 교회와 사회생활등에서 쉬지 않고 찾아 온다. 내 위치, 내게 매겨진 자리가 불러오는 책임이 거룩한 부담이 되어가고 횟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Footprint in the Sand”를 기억하며,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감히 하나님께 춤을 청 할 수 있는 내가 되어 보자고 야무진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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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 연합감리교회 뉴욕연회 여선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