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을 참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옆 좌석의 낯선 얼굴과 잠시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내가 여행을 떠나 왔음을 실감했다. 50인승의 최신형 버스에는 두 명의 현지인 기사와 영국에서 올라왔다는 가이드, 그리고 호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온 20명 남짓한 승객이 타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겨우 도착해 합류한 이들은 여행의 시작부터 시차와 싸우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느라 애쓰는 모습 이었다. 첫 목적지까지 앞으로 2시간 남짓을 더 가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나도 다시 얕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우토반 위를 달려가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서 인지 대학시절 독문학 수업을 함께 듣던 그를 떠올렸다. 당시의 제한되고 획일적인 사회분위기와 삶의 방식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들에게 그가 말하는 아우토반은 ‘자유’라는 세계로 나가는 비상구처럼 들렸었다. 자기 발보다 큰 군화를 신고 자켓 대신 교련복 상의를 입었던 그의 손에는 늘 랭보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시집 대신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 표를 들고 나타났다. 그때 그의 알 수 없는 웃음이 늦가을 햇살만큼 쓸쓸했었음을 기억한다. 학우들 사이에서조차 서서히 잊혀 갈 무렵 그의 편지를 받았다. 꾹꾹 눌러쓴 글씨마다 지독한 향수가 묻어 있어 시집(詩集) 갈피에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독일의 작은 소도시의 대학에서 전임강사 자리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은 것이 벌써 수 십 년 전의 일인데,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 안에서 그가 떠오르다니…. 갑자기 그가 꿈꾸던 세상에서 보낸 시간의 무게가 궁금해 졌다.
중세의 독일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로덴 부르크에서 잠시 쉬어 갔다. 성 안쪽에 둘러싸인 망루는 또 다른 망루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보행할 만큼의 좁은 폭으로 성을 감싸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성 중심에는 큰 광장이 있고 광장은 모든 성 안의 사람들이 소통하는 길과 길이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교회는 크지 않았으나 화려하고 장중한 성전은 세월 속에 쌓인 그들의 순백한 믿음의 징표를 보여 주는 듯 했다. 사진기의 셔터를 이 모퉁이에서 누르면 돌아서 있는 나는 누군가의 풍경이 되고, 그 또한 기꺼이 나의 풍경이 되어 주었다. 높지 않은 언덕에서의 건물을 돌아서면 길은 광장으로 열리고 광장을 끼고 돌면 좁은 골목 사이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국경선에는 검문소 대신 경계의 시작임을 알리는 간판 하나가 반기고 서 있었다. 새들처럼 사람들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이웃이 되었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 놓은 길은 길로써 아름다웠다. 그저 그 곳을 여행하는 내가 낯 설을 뿐 이미 낯선 땅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아름다운 길은 다시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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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