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알래스카를 여행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남가주와는 달리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이 인상적이었다.
“여긴 LA가 아니로구나!”하고 처음 깨달은 것은 도착하자 마자였다. 앵커리지 공항에 내려 렌트카를 빌려 산악회 후배가 사는 와실라라는 곳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이 생각나서 큰 쇼핑몰에 차를 세우고 물건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건물 밖을 나오니 자동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물건 산 가게로 돌아가 매니저를 찾았다. 그리고는 “차를 세운 곳에 가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도난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차에 대해 자세히 묻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곳에 자동차 도난사건 같은 건 없습니다.”그리고는 10여 분 지난 후 자동차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섣불리 ‘도난’이라는 말을 꺼낸 나는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른다. 온갖 도난 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LA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었다.
알래스카는 땅은 넓고 인구는 적어서 어디를 가나 한적했다. 면적이 남한의 14배라고 한다. 길가에는 알래스카의 상징이라는 ‘화이어 위드’ 라는 빨간 꽃들이 한없이 피어 있고 사방에 호수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사이즈의 호수만 300여만 개 가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호수를 끼고 있는 광경이 그림 같았다.
그런가하면 산위의 눈과 빙하들이 녹아내려 조각난 얼음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광경이 지구온난화를 실감케 했다. 가슴 한쪽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아렸다, 세월이 더 지나면 더 이상 빙하의 웅장함을 볼 수 없게 되리란 생각을 하니 이것이 ‘알래스카의 눈물’이구나 싶었다.
알래스카의 순박한 삶의 모습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개에 대한 사랑이다. 특히 우리가 갔던 와실라에서는 어디를 가나 개들 천지였다. 그곳에 사는 후배에게 물으니 와실라와 인근 지역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했다. 어느 집이든 개 한두 마리는 키운단다. 그 이유는 와실라가 개썰매 대회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매년 3월 개썰매 대회가 열리면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어 도시가 북적북적 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눈이 별로 많이 오지 않아서 행사를 다른 도시로 옮겨야 했고, 주민들의 실망이 대단했다고 한다.
와실라의 개사랑은 좀 유별나다. 지난 3월 대회 참가자 중 한 선수는 개를 250마리나 키우는데 그 많은 개 이름을 일일이 외워 부르며 자식 키우듯 한다고 했다. 또 지난 6월 와실라에 큰 불이 나 몇 에이커가 탔는데, 한 여성은 그 화재로 모든 걸 잃으면서도 기르던 개 50여 마리를 모두 살려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방에 ‘이런 개 본사람 없읍니까’ 라는 벽보가 붙어있다. 워낙 애절하게 찾아서, 우리나라 남북 이산가족들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고 절규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개에 대해 사랑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우리 모두 하게 된다면 이 사회가 좀 더 푸근해지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