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타적 사랑 (박찬효 / FDA 약품 심사관)

2015-09-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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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버티다가 작년에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지금은 ‘카톡’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동창 52명이 동기 카톡방을 출입하니 요란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동기의 소식을 듣는 것이 기쁨이다.

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와 포스닥 훈련을 받고 귀국해 연구소 소장직을 오래하다가 교수생활로 경력을 마감한 친구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 몸의 이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기 때문인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 중이라고 한다.

수많은 장례식에 참석해보았지만, 고인의 생애는 대부분 단 몇 줄로 요약된다. 그러한 인생인데, 우리는 오늘도 걱정, 욕심, 질투, 미움 등 감정의 풍랑 속을 헤맨다. 죽음의 침상에서는 가치 없을 것들에 우리는 목숨을 걸기도 한다.


살아갈수록 ‘사랑’ 만큼 인생을 인생답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남을 향한 이타적 사랑이다. 사랑을 빼면 세상은 바로 지옥이 될 것이다.

필라델피아에 사시는 H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백악관 건축자문 위원으로 일할 정도로 뛰어난 건축가인 그 분은 건축 사업을 잘 하다가 지금은 사무실을 반으로 나누어 교회와 회사 사무실로 쓴다 한다.

그분은 15년쯤 전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와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후에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식 후 10년을 잘 살다가 5년 전 다시 심장이식을 받아야만 될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6개월을 기다리던 중 마침 좋은 심장이 나와서 다음날 이식 수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옆방에 심장병 중환자가 입원했다. 담당의사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은 당장 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하루도 넘기기 어려운 상태라 사실상 죽음을 선고받았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H목사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자기는 이식받지 않아도 최소한 며칠은 버틸 수 있다고 하니, 6개월 기다려 찾은 심장을 옆방의 환자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한 결심이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렇게 진행되었고, 이분은 며칠 후 나온 심장을 이식받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두번씩이나 이식 거절 당한 심장이었다. 계속 기다릴 수 없어 그 심장을 이식받은 것이었다.

다행히 5년은 잘 버텼는데, 역시 그 문제 있던 심장이 기능을 상실해 세번째 이식 수술 가능성을 알아보니 심장협회의 규칙 상 세번은 이식수술을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해서 생명을 잃을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두번째 이식받기로 되어있던 건강한 심장을 타인에게 양보 했다는 사정을 알리니 한 번 더 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 전해왔다.

하지만 이식 심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고, 눈물겹게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험악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이런 분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청결하게 해준다. 그분이 빨리 다시 심장을 이식받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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