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20여 년 전만해도 하이웨이를 달리다 한국 자동차를 발견하면 신기해서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백화점에 가서도 한국브랜드마크가 선명한 값비싼 전자제품들을 보면서 그리운 친구라도 만난 양 코끝이 찡해지던 때도 있었다.
타국에서 내 나라가 만든 차를 타고 다니고 국산제품을 쓰는 것이 조국에 대한 애국이라 생각하며 작심하고 메이드인코리아를 외치던 순수한 애국자도 있었다. 그렇게나마 애국의 의미를 담아내려 했던 작은 외침 같은 마음들이 지금은 많이 흐트러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다른 민족들이 앞 다투어 한국제품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니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많이 파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고 애국도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복 명찰아래 빨간 리본에다 반공표어를 써서 달고 다녔고 일 년에 한두 번은 나라사랑 주제로 백일장을 개최했던 기억이 난다. 밤새도록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이나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우러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하던 그때는 어이없게도 애국자는 역사적 인물로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줄로 알았다.
집을 나가 봐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타국에서 살아 봐야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님을 진즉 경험하였고 지금도 때때로 조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다양한 감정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태평양을 건너와 살면서도 밥과 김치가 빠지면 허기지는 밥상을 대물림 하면서, 몸담고 살고 있는 나라소식 보다 멀리서 전파를 타고 오는 내나라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사는 일이 바빠도 부모형제를 대신해 주는 한국드라마에 마음을 뺏기고 울고 웃는 대다수의 이민자들의 삶은 결코 끊어 버릴 수 없는 민족애의 발로가 있기에 내나라 바라기를 멈출 수 없다.
지난 주말에는 가깝게 지내는 미국인부부 제임스와 패티를 저녁초대를 했다.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궁리를 하다가 이참에 한국음식을 선보이기로 했다. 김밥, 불고기, 잡채, 군만두, 야채전, 살짝 새콤해진 배추김치, 자작하게 올려놓은 깍두기 등으로 상차림을 하고 옥수수차도 미리 끓여 식혀 놓고 포크와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으로 마무리했다.
처음 접하는 음식을 너무나 경건하게 예의를 갖추고 진중하게 맛을 음미하는지 그 모습을 보니 우리의 음식이 더욱 귀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하나씩 먹을 때 마다 원더풀을 외치는 바람에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었고 상차림에 빠진 음식들도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더불어 문화와 역사까지 나열하다 보니 밤은 깊어 참외와 매실차로 후식을 하고 차린 음식을 미리 포장해 두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손에 들려주며 우리민족의 미풍양식도 소개하는 보람 있는 저녁시간 이었다.
조국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또 몰라서 무관심했던 평범한 사람들 일지라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즐겨 먹는 전통음식과 다양한 문화상품과 스포츠 등, 누구나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애국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독립투사나 애국열사는 될 수 없을 지라도 현재 처해진 위치에서 맡은바 본분을 다하고 예의와 도덕을 잘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도 작지만 나라 사랑의 길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한국뉴스는 북한과 대치상황을 숨 가쁘게 전달한다.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어서 시간만 끌고 또 불통인 저들을 지켜보는 온 국민의 답답하고 울분에 찬 마음을 같이 나눈다.
평화는 일방통행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 곳 지역사회에서도 자기과시와 명예욕에 심취해 모략과 분열을 거듭하며 때 뭍은 이름만 펄럭이는 개인과 단체들의 민망한 사태를 자주 목격한다.
바라기는 더 이상은 민족의 이름에 앞에 부끄럽지 않은 동포가 되길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한다. 나라사랑에는 특정한 사람도 또한 예외자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첫 해 여름 한적한 우리 동네에서 연분홍 무궁화 꽃을 마주했다. 우리겨레의 꽃을 보는 순간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가 떠올랐다. 나는 애국자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