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산 에어컨 (최미자 / 수필가)

2015-08-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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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 처음 이사를 왔을 적만 해도 듣던 대로 사철 온화한 기후였다. 그래서 관절염 환자들이 좋아하고, 겨울에 여행온 동부 사람들이 기후에 반하여 짐 싸서 이사 오는 곳이라고 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 탓에 우리 동네에는 천정에 선풍기가 설치된 집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면 짜증이 나도록 후덥지근해서 중앙 냉방시스템을 설치하는 집이 늘어났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나는 지난해 이웃이 한국산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하는 걸 보고 반가워 사려다가 어이없이 비싼 설치비에 놀라 그만두었다.

그런데 얼마 전 홈디포에 가니 수십 대의 한국산 이동식 에어컨이 뽐내며 줄지어 진열되어 있지 않은가. 가격도 350달러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다. 미국에서는 코리아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말썽꾸러기 북한만 알고 있어 답답한데, 한국제품이 늘어선 광경에 통쾌한 기분이었다.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언젠가 LG라는 이름이 생소해서 한국에서 온 분에게 물어보니 금성과 럭키가 합병했다고 했다. 한국에 살 때 금성은 텔레비전, 럭키는 치약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한국 상표의 편리한 이동식 에어컨이 대량 진열되어 뜨거운 여름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편과 의논한 후 두 주 지나 사려고 가보니 없었다. 다른 지점도 알아보니 아예 품절이었다. 하긴 우리 동네처럼 아침과 밤이면 추울 정도로 바람 부는 도시에서 무슨 중앙냉방 시설이 필요하겠는가. 이동식 에어컨이 인기가 있을 만했다.

결구 100~200달러가 더 비싼 LG의 신상품을 샀다. 옆에 다른 회사제품들도 경쟁하듯 진열 되어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연구해서 내놓은 에어컨을 선택했다. 미국에서는 돈을 더 내고 산 물건들은 그만큼 품질이 확실히 좋았다.

가까이 지내는 미국인 이웃은 몇해전 오랜 세월 애용하던 포드 자동차를 던져버리고 소나타를 샀다고 말하더니, 이젠 설거지기계도 한국제품(LG)을 샀다며 우리에게 자랑했다. 한국 전쟁 후 우리 부모세대와 우리가 허리를 졸라매며 애써 배운 공부이고 기술이 아니던가.

에어컨을 자동차에 싣고 오는 동안에도, 집의 창문에 설치하는 동안에도, 어쩜 이렇게 잘도 만들었을까 하며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한없이 느꼈다. 부디 품질을 보장하는 애프터서비스로 신용을 쌓아 세계에 계속 진출하기를 나는 두 손 모아 빈다.

세계인의 손바닥에서 삼성과 LG 전화가 놀고 있는 걸 보며,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연구하며 노력하는 내 조국의 존경스러운 분들의 얼굴도 그려본다.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지 는 않지만, 그 고귀한 분들의 정성이 있어 만인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있지 않은가.

90년대 초쯤 우리 집 가족실 창문에 걸쳐 놓은 에어컨 하나. 필터를 깨끗이 씻어주며 사용해서인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작동이 잘 된다. 지금은 구하기 쉽지 않은, 평판 좋은 메이드 인 USA 물건이다. 경제적인 가격으로 들여온 새 에어컨과 함께 에어컨 두 대가 시원한 바람으로 합창해주는 여름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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