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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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지혜 (김창만 / 목사)

2015-08-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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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불락(知止不落)’. 멈출 줄 알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릴 수 있지만 누리지 않는 것, 더 먹고 마실 수 있지만 절제하는 것, 오라는 곳이 많지만 다 가지 않는 것, 할 말은 많아도 침묵하는 것, 이것이 지지(知止)다.

지지의 미덕을 실천할 때 존경과 품위를 누린다. 비난이나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자연히 리더가 된다. 이것을 ‘불락(不落)’이라고 한다.

켄터키, 루이빌은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로 유명하다. 40여 년 전 한 조련사가 100여 마리의 야생마를 조련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주면서 마실 물은 주지 않는 혹독한 조련이다. 말 우리 건너편에는 넓은 시내가 흐르고 있고, 푸른 풀밭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실어다 주는 물 냄새가 우리 안의 말들을 미칠 정도로 자극했다. 하지만 조련사는 우리의 문을 열지 않았다.


말들이 목이 타들어가고, 하나둘 쓰러질 무렵에야 굳게 닫힌 우리의 문이 열렸다. 우리 밖으로 나온 말들은 건너편 시내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당도했을 무렵이다. 조련사가 갑자기 말들을 향해 풀피리를 불었다. 그 자리에 멈추라는 신호다.

조련사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말들은 강물에 머리를 박고 물을 들이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목마름을 참고 돌아오라는 조련사의 소리를 듣고 순종한 말은 단 한 마리였다. 조련사는 이 말의 이름을 ‘세크리테리엇’이라고 명명하고, 우리로 데리고 와 집중 조련했다.

‘세크리테리엇’이 두 살이 되던 1971년에 켄터키 더비에 처녀 출전했다. 그 해에 우승은 따내지 못했지만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973년 켄터키 더비부터 우승을 따냈다.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까지 휩쓸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세크리테리엇’은 일약 세계가 알아주는 명마의 반열에 올랐다. 한 순간의 멈춤과 절제가 세계 최고의 명마로 만든 것이다.

멈춤이란 무조건 참고 절제하는 것이 아니다. 멈춤이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에너지의 축적이며, 새로운 추진력을 응축하는 성화의 시간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멈춤의 시간을 통하여 삶의 공간을 정복한다.

아프리카 낙타의 절제는 유명하다. 낙타는 누구보다 잘 달릴 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전사를 태우고 달리면 시속 20킬로미터의 속력을 낼 수 있는 낙타이지만, 시속 5킬로미터의 느린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서 먼 사막을 횡단한다.

외부에서 침투하는 열기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마음까지 성급하여 내달리면 낙타는 그 열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낙타는 행동 하나하나를 절제하며 아낀다.

사람으로 치면 낙타는 수도자와 같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남이 없다. 남이 뛴다고 해서 함께 뛰지 않는다. 항상 담담하고 일정하다. 늘 동일한 보폭으로 순례의 길을 가듯, 주어진 길을 간다. 그런 느림과 비움의 방식으로 낙타는 뜨거운 사막에서 승리한다.

성경에서 낙타와 같은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바로 왕 위에 오르지 않았다. 왕이 될 때까지 15년 이상의 긴 조련의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사울은 달랐다. 그는 폭포같이 급하고 직선적이었다. 사울은 직선의 성급함으로 무너졌고, 다윗은 곡선의 완만함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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