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혼의 귀 (김옥교 / 수필가)

2015-08-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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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으며 귀로도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들을 수 없는 것들이 더 귀하고 소중한 예가 많이 있다. 대학 재학 때 철학과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이 먹는 입을 위해서만 산다면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이며, 눈을 보며 사는 사람은 좀 더 차원이 높은 삶을,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은 가장 높은 경지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50년도 더 넘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가끔 나는 그 말을 생각하곤 한다.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70이 넘은 사람들이다. 대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간혹 아직도 패물을 위해 수만달러를 쓰고, 옷이나 가방, 구두에 수천 달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불쌍한 것은 그래봐야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도 예쁘다고 칭찬해 주지 않으며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굴에 수백 달러짜리 화장품을 발라도 주름살이 쪼글쪼글한 얼굴은 거기서 거기다. 오히려 늙으면 젊을 때 예쁘지 않았던 친구가 의외로 더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인생사는 공평한 것일까.

지난 주말에 딸애의 생일이 있어서 스틴슨 비치에 가서 하룻밤을 묵고 왔다. 저녁노을을 등에 받으며 해변을 걷고, 다음날 새벽에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는 깨끗한 해변을 맨발로 걸으면서 모래가 닿는 감촉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망망한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든다.

사위인 스티브에게 물었다. 이 별장을 산지가 얼마나 됐느냐고. 스티브는 자신이 세살때 부모님이 사셨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스티브의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아마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일 것이다. 이 해변의 별장은 그들이 살던 동네에서 삼십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편리함으로 집을 샀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는데,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는 그 맛이 색달랐다. 나는 그곳에서 떠나올 때까지 더 많은 바닷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 미세한 소리까지 들린다. 바람 소리, 가끔 먼 곳에서 개 짓는 소리, 안개 때문에 큰 배가 지나가며 붕붕 거리는 소리, 보통 때는 잘 안들리다가도 내 깊숙한 곳,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 영혼의 귀가 열리기 때문이다.

명예나 돈이나 권력, 눈에 보이던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어느날 속절없이 내 곁을 떠나 갈 것들, 그것 때문에 젊은 날은 무수한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았다.

이젠 모든 짐들을 내려놔야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이고, 귀로는 안들리지만 영혼의 귀로 들리는 그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야지.

우리가 죽었을 때 “그 사람 한 세상 잘살았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가만히 영혼의 귀를 기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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