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 기자
이제 내일이면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멀리 조국을 떠나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살면서도 우리의 모국어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 만약 일제 강점기가 끝나지 않아 아직도 식민 통치를 벗어나지 못 했다면? 나라를 잃은 민족으로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광복 70주년은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던 어린 소녀가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만큼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하지만 좀처럼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분단을 해결하고 민족의 70년 숙원인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과연 힘 있는 정치인도 아니고 유명한 인권 운동가도 아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 것일까?
마더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직후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기자의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 만약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가 세계 평화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집에 가서 당신 가족을 먼저 사랑하십시오."
그렇다. 바로 이거다! 마더 테레사의 조언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맡겨진 우리의 가족 공동체, 좀 더 나아가 지역 공동체를 먼저 사랑할 수 있다면 ‘세계 평화’니 ‘평화 통일’이니 하는 이런 거창한 이슈가 더 이상 버겁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네 인간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만 존재 자체가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충 또한 항상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
’다윗’이라는 성경 속에 나오는 위대한 왕은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어린 목동에서 왕이 되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난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았다. 특히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거인과 싸워 이긴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직전에 있었던 그의 친형’ 엘리압’ 때문에 겪은 고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엘리압은 전쟁터에 찾아온 다윗에게 "양이나 지킬 것이지 주제도 모르고 교만하게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심하게 화를 내며 동생을 모독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자신을 많은 사람 앞에서 무시하고 비난하는 형과의 싸움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골리앗이라는 큰 거인과 싸워 이길 궁리에 여념이 없었던 다윗은 형의 그러한 무시와 조롱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골리앗을 찾아 나섰다. 다윗은 자신의 운명 공동체인 가족과 싸우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진짜 적수를 알아보고 싸워 이겼기에 마침내 왕이 됐다.
취재를 하며 지역 사회를 위해 ‘대의명분’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다가도 서로 의견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 한인들끼리 갈등을 겪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 가까웠던 사이가 벌어지고 자존심 싸움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과의 싸움을 피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럴 때 형과의 싸움이 자신의 비전을 이루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통찰하고 쓸데없는 소모전을 피했던 다윗왕의 지혜를 배울 수는 없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는 성노예로 팔려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지키기, 동해 표기 등 ‘일본이라는 골리앗’과 싸워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더미다.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는 ‘북한 공산독재정권이라는 거인’과 싸워서 잃어버린 우리 동족의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란 판이다.
한인들이여! 우리는 좋든 싫든 운명 공동체다! 적어도 우리끼리 사소한 일로 원수처럼 싸우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말자. 그 대신, 우리들의 진짜 적수인 골리앗과 싸워 이길 대책을 마련하자. 거인과 싸워 이길 힘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