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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체스터/기자의 눈: 야채와 과일의 인공미

2015-08-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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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웨체스터 지국장>

언제부터 과일이나 야채에 레이블이 붙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과일 야채를 씻을 때 마다 번번이 그 레이블을 띄어 내느라 무척 애를 쓴다.

빨간 피만 고추, 토마토, 오이, 아보카도 그리고 감이나 배, 복숭아에도 일일이 레이블이 붙어 있다. 블루베리와 포도 같이 자잘한 열매를 빼고는 거의가 레이블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잘 뜯어지는 것도 가끔은 있지만 어떤 것은 손톱으로 긁어내야 겨우 뜯어지므로 과일에 상처를 내곤 한다. 스티커를 떼어 내어도 남아 있는 끈적한 풀은 몸에 해로울 것만 같다. 껍질을 벗겨내지 않고 그냥 먹는 것 일수록 왜 레이블을 붙여 놔서 고생을 시키나 화가 난다.


처음에는 복잡한 코드의 레이블을 보면서 믿을 만한 물건인 듯 했다. 한 동안은 무심코 의례히 그러려니 했지만, 인력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작은 알맹이에 레이블을 붙이는 이유가 뭔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혹시 계산대에서 쉽게 스캔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박스에 들어 있는 과일에도 각각 다 레이블을 붙여있으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과연 이것이 왜 필요한 것일까.

FDA에서 하는 일이니 건강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레이블에 적힌 숫자가 과일 야채의 아이덴티티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즉 재래식으로 재배가 된 것은 4자리 숫자, 오개닉 제품은 5자리 숫자이면서 첫 숫자가 9로 시작된다. 그리고 종자를 개발한 야채나 과일은 숫자 8로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스티커 종이나 접착제는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알만한 숫자를 들여다 본 적은 없다. 다만 그것을 뜯어내느라 애를 쓸 때는 점점 더 세상사는 일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더구나 야채와 과일들에서 인공적인 느낌이 전해 올 뿐 싱싱하고 신선한 자연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뿐 아니라 패키지에 들어있는 야채의 모양이 일률적으로 똑 같은 것도 유감이다. 어떻게 저렇게 똑 같은 모양으로 재배를 할 수가 있을까. 특히 한 뼘 정도의 가느다란 일정한 사이즈의 오이가 가지런하게 담겨져 있는 패키지를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저렇게 하기 위해 사이즈가 안 맞거나 구부러진 오이는 다 버렸을까? 우리 집 뒷마당 손바닥 크기로 밭에 열린 오이들은 휘어지고 울퉁불퉁하기만 한데 말이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들 듯이 식물 종자를 인공적으로 변형시킨 것일까.

그럴수록 집에서 가까운 파머스 마켓에 발걸음이 잦아진다. 자유자재로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과일에 정이 간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안심이다. 왠지 조금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오히려 싼 것도 많다. 바로 옆에 있는 밭에서 따 온 것들이라 수많은 제품관리와 유통 과정이 생략된 이유일 것이다.

기후 변화 등 인공으로 인한 자연 훼손이 우리가 당면한 커다란 과제가 되어 있다. 일상의 자그마한 일이지만 연한 껍질 과일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레이블 스티커마저도 왠지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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