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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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에서 맛본 원조 ‘빠에야’

2015-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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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식당 요리사 섭외, 직접 장작불 지피고 즉석 ‘빠에야’ 만들어…

▶ 시내 한복판 ‘센트럴 마켓’ 유럽서 제일 큰 규모

[SPAIN ③ 발렌시아]

발렌시아(Valencia)에서는 아주 특별한 초대를 받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우리를 초대한 사람은 호세와 크리스티나 바예스터 부부로, 발렌시아에서 살고 있는 스페인 현지인 커플이다. 호세는 탁월한 클라리넷 연주자여서 미국에 자주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카메라타 퍼시피카’라는 남가주의 실내악 연주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 인연으로 우리 그룹의 스페인 여행을 주선하게 된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호세와 크리스티나 부부는 얼마나 착하고 친절한지, 2주 동안 모든 사람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펴주었는데 그 절정이 자기네 고향인 발렌시아에서의 환대였다.


발렌시아로 들어가는 길에 우리는 호세의 고향인 몬코파(Moncofa)에 들러 그의 부모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호세의 부모는 우리 버스가 도착하는 곳까지 마중 나와 바닷가로 안내하더니 오르차타(orchata)라는 전통음료(미숫가루 비슷한 차고 달콤한 곡물음료)와 파르톤(farton)이라는 과자(추로 비슷한 길쭉한 빵)를 대접하며 시원하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쉬도록 해주었다.

몬코파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여름휴가 시즌에는 매우 북적이는 피서지가 된다고 한다. 거기서 호세가 어릴 적부터 다녔다는 작은 성당에도 들어가 구경하고, 인적 드문 골목들과 바닷가 산책로를 걸어보는 등 정답고 귀여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발렌시아에서 사흘째 되던 날,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운 초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크리스티나의 친정 부모가 우리를 위해 빠에야 디너파티를 베푼 것이었다. 발렌시아가 원조인 빠에야(paella)는 여러 고기와 해물, 야채를 쌀과 함께 사프란(saffron)이라는 향신료를 넣고 볶아서 죽처럼 끓이는 요리로, 마치 철판볶음밥 비슷해서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다.

만들기 쉬운것 같아도 조리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고, 미국에는 해물 빠에야가 많지만 원래는 토끼고기와 닭고기 빠에야가 오리지널이라고 한다.

사실은 별 기대 없이 원조 빠에야나 먹어볼까 하고 방문했는데 그 정성 어린 대접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원이 굉장히 넓은 크리스티나 집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일렬로 도열한 수많은 요리사들이 환영인사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직접 하몽을 썰어내면서 샴페인을 서브하더니 셰프와 쿡들이 직접 장작불을 지펴 4종류의 파에야를 즉석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빠에야요리로는 최고로 치는 현지 식당의 요리사들로서, 크리스티나 부모는 이들을 섭외하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닭고기 빠에야, 토끼고기 빠에야, 해물 빠에야, 오징어먹물 빠에야가 40여분만에 완성됐고, 우리는 아름다운 풀 사이드에 마련된 만찬 테이블에서 빠에야의 진수를 원하는 대로 맛볼 수 있었다.

이야기의 끝은 거기가 아니다. 다들 너무나 맛있다며 고마워하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인 부부가 미국서 온 손님들을 위해 민속공연단을 초청한 것이었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10여명의 공연팀은 민속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발렌시아 전통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끝이 아니었다.

다들 술이 거나하게 취해 헬렐레하던 무렵 펑펑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정원 뜰에서 불꽃놀이가 터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동네 폭죽수준이 아니라 할리웃보울 수준의 어마어마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에 펼쳐져 우린 또 한 번 놀람과 동시에 감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순박하면서도 품위 있는 스페인 중산층 가족의 진심을 담은 환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발렌시아는 옛 건물과 현대인의 삶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다. 고풍스런 전통의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현대적 세련미를 갖춘 도시로, 젊은이들의 밝고 여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사흘 머무는 동안 우리는 성당과 세라믹 뮤지엄, 불의 축제 뮤지엄, 센트럴 마켓 등을 방문했다. 시내 한복판의 센트럴 마켓(Mercado Central)은 8,000스퀘어피트의 대형시장으로, 유럽의 실내시장중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하몽과 생선 등이 매일 공급되는 곳인데, 바쁘고 복잡했지만 생각보다 무척 깨끗하고 쾌적했다.

1238년에 지어진 발렌시아 성당(Valencia Cathedral)은 고야의 그림들과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다는 ‘성배’를 보유한 곳으로 유명한데, 특별히 푸른색 세라믹 타일을 얹은 돔 지붕들이 아름답다.

불의 축제 뮤지엄(Museo Fallero de Valencia)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박물관이다. 발렌시아에서는 매년 3월 닷새 동안 광란의 ‘불의 축제’ (Las Fallas de San Jose)가 열린다고 한다. 종이로 만든 온갖 모양의 거대한 조각품이 수백점이나 출품돼 퍼레이드를 벌이고 마지막 날 모두 불태우는 장관이 벌어지는데 그때 인기투표를 통해 최고작으로 선정된 한 개의 조형물만이 살아남아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는 것이다. 1937년 이후 해마다 하나씩 살아남은 작품들이 모두 전시돼 있는 이 박물관에서 우리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종이인형들을 돌아보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현대 발렌시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명물은 ‘예술과 과학도시’ (The City of Arts and Sciences) 콤플렉스다. 유럽 최대 규모의 연구·학습·교육·레저의 다목적 해양박물관으로,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와 펠릭스 칸델라가 설계한 이 콤플렉스는 한눈에 보아도 예술작품 같은 건축물, 과학기술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특이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발렌시아는 바르셀로나가 1992년 올림픽으로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현대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벨트를 조성하자 하여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예술 과학도시’를 창조했다.

도심의 강을 따라 어마어마하게 큰 부지에 5개의 건축물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아이맥스 영화관과 국제 회의장이 있는 ‘레미스페릭’ (L’ Hemisferic), 해양박물관(L’Oceanografico),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Principe Felipe), 야외정원(L’Umbracle), 그리고 오페라하우스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 (El Palacio delas Artes Reina Sofia)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가운데 4개 공연장을 갖춘 오페라하우스를 투어했다. 전문가이드가 한 시간 넘게 우리를 구석구석 안내하며 멋진 외관과 인테리어, 첨단시설과 음향을 갖춘 대형 공연장을 자랑했다. 하지만 온갖 훌륭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론 전문적인 관리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과 10년 전 개관했는데도 제대로 청소와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곳곳에서 더럽고, 어설프고, 메인트넌스가 소홀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남가주에서 게티나 라크마, 디즈니홀 같은 곳을 다닐 때 언제나 새 건물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고 완벽하게 관리된 시설을 당연한 것처럼 향유한다. 그렇지 않은 곳에 다녀오니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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