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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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떠나야하는 이유 (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2015-07-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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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어느새 7월이다. 시간만큼 자신의 길을 묵묵히 성실하게 걷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잠시 쉬어가고픈 계절이다. 미국엔 정해진 휴가철이 따로 없지만 자녀가 있으면 아무래도 방학을 이용한 가족여행을 선호할 것이다. 반면 자녀가 없는 가정은 이 기간은 피하고 싶을 게다. 젊은 청년들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괴나리봇짐을 메고 낯선 세상을 향해 ‘나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모양과 목적은 다르지만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떠나는 일은 시계와 기계에 맞춰 사는 우리에게 휴식과 쉼을 주고 삶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현실은 엄마로서, 주부로서 떠나는 가족여행에서 바라던 쉼과 휴식을 얻기 힘들다. 장소만 변하였을 뿐 역할에 따른 식사준비와 집안일은 별로 줄지 않는다. 돌아오면 밀린 집안일과 가져온 빨래로 2-3일은 가사노동에 깔려 지내기가 일쑤다. 그래서 남편에게 3년 전 평생 처음 나만의 휴가를 신청해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남자 셋을 남겨두고 떠나는 일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잠시 망설였지만, 살림하며 파트타임 일하면서도 무사히 학위를 마칠 수 있었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졸업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떠나보니 그냥 꿈꾸던 ‘쉼’ 이상의 귀한 깨달음들을 얻었다.


첫째는 ‘내가 없어도 집안일과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 속담처럼 남자 셋이 역할을 분담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그럭저럭 빈자리를 잘 메워줬다. 주로 엄마인 필자를 통해서 소통하던 방식에서 아빠가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며 남아 있는 식구들끼리 더 가까워지고 많은 대화가 오고갔음에 감사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신경쇠약 증세 중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서 휴가 가면 큰일 난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환자에게 휴가를 처방할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주변의 사람들을 통제하려 하고 주변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 한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본다.

직장에 올인해서 살던 지인이 있다. 큰 회사 팀장을 하면서 가족보다 일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기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젊은 나이에 꽤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백혈병 판정을 받고 1년 넘는 치료 중에 그는 자기가 없으니 부서가 없어졌을 거라 걱정했다. 완치된 후 회사에 복귀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부서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고 예전보다 더 활기찬 모습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 때 그 충격은 백혈병 선언을 받을 만큼이나 컸다고 말하며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는다고 했다. 일상을 떠나보면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위험한 통제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내려놔진다.

둘째는 부재중에만 가질 수 있는 그리움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존재가 더 고맙게 느껴진다. 예일과 하버드에서 가르치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사는 공동체에서 생을 마감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는 부재에 대해 이렇게 쓴다. “인생의 신비 중 하나는 가끔 우리는 마주 대할 때보다 서로를 기억할 때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서로 보지 않고 있을 때 기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럴 때는 서로의 다른 모습 때문에 방해 받지 않으면서 서로의 내면 중심을 더 잘 보고 이해할 수 있다.” 떠나보면 이 글귀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서로의 빈자리가 새삼 고맙다.

이민 사회에서 바쁜 일상 중에 ‘쉼’을 위한 짬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떠나야 한다. 먼 곳이 아니어도, 하루만이라도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마음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는지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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