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화제의 인물
▶ 20여년간 300여 대회 참가 이혜순씨
50달러짜리 자전거로 첫 경기 완주 후 도전 계속
지난해 전국 철인2종.3종 우승...올해의 선수상
“다른 사람도 하는데 저라고 못하겠어요? 제 인생에 포기란 없습니다.”
10일 만난 이혜순(사진)씨는 올해 71세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체격에 숨길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70대 할머니로 보이지만 이씨는 지난 20여년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철인 3종 경기에 300회 이상 참가하며 무수한 메달을 거머쥔 진정한 ‘철인’이다.
이씨가 철인 3종 경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23년 전 맨하탄의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퇴근길에 우연히 철인 3종 경기 캠프에 관한 전단지를 받아들면서 부터다.
"어린 시절 육상선수로 활약한 적이 있어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이씨는 "그러나 ‘수영 1마일, 자전거 26마일, 달리기 6.2마일’을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철인 3종 경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터라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처음 출전한 1993년 전미 철인 3종 경기. 아무 경험도 없었던 그는 토이저러스에서 구입한 50달러짜리 자전거에 런닝화가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참가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야 했지만 산악용 사이클이 아니었던 터라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야했다.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이씨는 "나는 햇병아리였지만 기죽지 않았다"며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남편이 그 자전거로는 경기를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더욱 오기로 이를 악물고 경기를 마쳤다"고 말했다.
당시 월스트릿의 노무라 증권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부사장으로 일하던 이씨는 매주 100시간에 가까운 살인적인 업무에도 불구하고 쉬는 날이면 수영, 달리기를 연습하고 사이클 캠프에 참가해 지구력과 기술을 늘렸다.
그렇게 불굴의 의지로 동네의 작은 대회부터 전미 대회와 세계 대회에 매년 출전하며 연령별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이제까지 세계 대회에서만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를 땄다. 지난해에는 전미 철인 2종과 3종 경기에서 나란히 우승을 차지하며 오는 8월 수천명의 선수 중 18명에게만 주어지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장년층의 아시안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매년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이씨는 머니 매거진 등 미국의 여러 유명한 잡지와 언론에 소개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얼음장보다 찬 강물에서 2층짜리 건물만큼 높은 파도와 싸워가며 경기를 해야 될 때는 ‘내가 뭘 위해서 이것을 하고 있나’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경기를 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며 "나이가 들어서, 몸이 아파서 못한다는 것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누구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이씨는 22살이던 1966년 남편과 뉴욕으로 이민, 뉴욕대(NYU)에서 야간 수업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세계적인 금융회사 노무라 증권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남편과 뉴저지 모리스카운티와 플로리다에서 은퇴 후 여생을 보내고 있다는 이씨는 "나이가 들면서 눈도 침침해지고 허리도 조금씩 아프지만 포기는 없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철인 3종 경기에는 계속 출전할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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