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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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아닌 ‘10년우정 맺어진 친구’ 사이죠

2015-07-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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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르포/ 한인노인들의 사랑방 포트리 웬디스를 가다

▶ 지역 한인노인 하루 평균 6개그룹 70여명 찾아

손님아닌 ‘10년우정 맺어진 친구’ 사이죠

포트리 웬디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한인 노인들의 모습.

지난달 29일 오후 3시께 뉴저지 포트리에 자리한 패스트푸드점 ‘웬디스’ 매장 안에선 익숙한 우리말이 곳곳에서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인 노인 20여명. 이들은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각자의 테이블에서 손주 자랑, 한국 정치계 비판, 건강 고민 등 노인들만의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런저런 일들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는 이곳 매장의 ‘공식 소음(?)’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그러나 매장 관계자들도, 손님들도 모두 이 소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포트리와 팰리세이즈 팍의 경계라고 볼 수 있는 46번 도로 선상에 위치한 해당 웬디스에 한인 노인들이 몰려든 건 약 10년 전부터.

뉴저지의 대표적인 한인 노인아파트인 505 아파트(포트리)와 뉴저지 상록회원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된 작은 ‘티타임 모임’이 점차 성장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하루 평균 6개 그룹으로 분산된 70여명의 한인 노인들이 찾는 ‘사랑방’이 돼 버렸다.


기자를 포트리 웬디스로 초대한 한 노인은 "오후 2시부터 노인들이 모이기 시작해, 이 사람, 저 사람이 이곳저곳에 분산돼 앉고, 또 몇몇이 떠나고, 다른 그룹이 모이고.. 이렇게 하루 종일 이곳을 찾는 한인 노인이 많을 땐 100명까지도 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특히 지난해 초 퀸즈 플러싱의 맥도날드에서 한인 노인들이 오래 앉아있다는 이유로 쫓겨난 일과 비교하면, 이곳 노인들은 쫓겨나기는커녕 오히려 환영에, 극진한 대접까지 받고 있는 듯 했다. 이와 관련해 이곳을 찾는 노인들 역시 “웬디스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곳의 커피값은 75센트. 하지만 매장 측은 노인들에게 빈 컵을 함께 제공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노인들이 한 잔으로 2~3명이 나눠 마실 수 있게 배려하고 있었다. 장시간 앉아 있어도 매장 측과 얼굴 한 번 붉힌 일이 없으며, 가끔 떡, 빵과 같은 외부 음식을 가져와도 매장 관계자는 ‘씨익’ 웃을 뿐 제지한 적이 없다고 노인들은 전했다.

이런 웬디스에 노인들도 나름의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한인 모임인 ‘뉴저지 웬디 사랑방 노인 클럽회(회장 정달성)’는 ‘청소비로 써 달라’며 매년 500달러를 전달하고 있고, 뉴저지 한인 상록회는 감사패를 만들어 지난해 매장 운영진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매장 한 켠에는 당시 감사패를 전달받은 해당 매장의 케빈 우드사이드 대표와 한인 노인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있기도 하다. 이들의 관계는 더 이상 ‘손님과 식당’이 아닌 ‘10년의 우정으로 엮인 친구’, 아니 그 이상으로 보였다.

우드사이드 대표는 이날 자리를 비운 탓에 만날 순 없었지만 지난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인데 한인사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게 돼 기쁘다"며 "변함없는 서비스를 약속한다"고 밝힌바 있다.

뉴저지 상록회 권영진 이사장은 "시니어 센터, 각종 노인회 등 우리 노인들이 갈 곳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편하게 모여 담소를 나누기엔 이곳 웬디스와 같은 장소가 없다"면서 "웬디스가 외로운 노인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손님 이상으로 대해줘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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