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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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과로사’ 한다 (허병렬 / 교육가)

2015-06-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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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필자를 하루 종일 즐겁게 하였다. 백수건달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건달을 뜻하니까, 백수라고 하면 뚜렷한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해석된다.

‘과로사’하면 뚜렷한 직업인의 몫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들은 왜 백수에게 일을 부탁하게 되는가? 그는 시간의 자유가 있다. 부탁하는 일의 성격을 잘 이해한다. 각종 일에 대한 체험이 있다.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도, 때로는 무보수라도 불평이 없다... 등이 아닐까? 하여튼 현재 직업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드레꾼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과로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왜 백수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잘 돌봐줄까? 백수는 남을 돕고자 한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하면서 각종 체험을 한다. 일을 부탁한 사람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즐긴다... 등이 아닐까?


이와 비슷한 말로 ‘무사분주’라는 것이 있다. 무사는 ‘아무 일이 없다’는 말이다. ‘분주’라는 말은 몹시 바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사분주’는 아무 일이 없지만 몹시 바쁘다는 뜻이다. 앞뒤가 모순되는 것 같은 이런 분위기를 실생활에서 체험하게 된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어떤 일을 하였다고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게 일상생활인 것 같다.

어린이들을 보고 있으면 하루 종일 바쁜 어린이가 있다. 이것저것 제가 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다른 친구를 돕는 일로 바쁘다. 물건이 없다고 하면 빌려주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고, 때로는 심부름도 대신한다. 그러다보면, 자기 자신의 일 처리가 허술하게 되지만 개의치 않는다. 자기 일밖에 모르는 어린이와는 다르고 기특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쓰인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에 물이 쏟아졌고, 그것을 한 어린이가 걸레로 닦고 있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물을 흘린 어린이는 저쪽에서 놀고 있고, 걸레질을 하는 어린이는 거기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행동도 제각각이다. 어린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하나를 올바르게 고쳐주려고 할 필요는 없는 줄 안다. 그것이 쌓이면서 그 자신이 조절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네가 쓸 생각도 해야지. 그렇게 다 나누어주면, 나중에 너는 쓸 것이 없지 않아” 어른의 이런 말을 듣고도, 어린이는 친구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조절하는 힘이 없다. 이와 같은 체험이 거듭되면서 자기 스스로 조절하게 된다.

‘백수의 과로사’는 인간의 약점이고, 강점이기도 하다. 결국은 내 자신만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다가 생명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들 틈에서, 그것을 초월하고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할 것을 준다. 우리의 삶의 뜻은 무엇이며,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움일까.

필자는 어느 틈에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종말이라고 느껴진다. 그것은 과로사에 이르는 일들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을 해본다. 어느 백수가 과로사하자 조문객이 태산을 이룬다. 설령 조문객이 아무도 없다고 하자. 그래도 백수는 행복할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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