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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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같이 살았네요!” (박희경 / 몬테리 팍)

2015-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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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1965년 봄 중매로 만나 약혼한지 1주일만에 결혼해 어느덧 50년을 같이 살았다.

두 아들 부부는 “금혼식이니 특별하게 기념해야 한다”며 세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모든 친구들을 초청하는 성대한 파티, 기념여행, 가족끼리의 축하파티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성대한 파티’는 일단 제외했다. 비용도 많이 들고 괜히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 같고 손주들이 파티 참석하느라 학교를 결석하는 것도 싫었다. 다음, 우리 둘만의 여행은 더 더욱 싫었다. 10년 전 결혼 40주년 때는 손주들이 아직 어려 학교공부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9식구가 애리조나, 보더로 여행을 가서 즐겼던 기억이 난다.


남는 것은 가족끼리의 기념파티. 큰아들은 오리건, 포틀랜드에 살고, 작은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어 우리 부부가 북쪽으로 가기로 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의 호텔에 10식구가 모여 인근의 유명 식당들을 돌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들들이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결혼 10주년이 막 지났을 때였다. 큰 아들이 학교에서 가족관계에 대해 공부할 때 우리의 약혼, 결혼, 5주년, 10주년 사진첩을 들고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폐백 사진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관심을 보이고 결국은 교직원, 교장 선생님까지 모두 보게 되자 아들은 상당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이후 아직껏 우리부부는 매 5년마다 사진을 찍고 있고, 아들들도 결혼 후 그렇게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을 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큰 다툼 없이 평온하게 살았으니 감사할 뿐이다. 살면서 자잘한 다툼이 없을 수 없지만 내가 토라지면 남편이 장난스런 행동으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니 싸움이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지나고 보니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던 것도 부부 사이를 단단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위암과 간경화증을 이겨냈다. 18년 전 생전 토하지 않던 남편이 저녁식사 후 갑자기 토해서 이튿날 바로 의사를 찾아가니 위암 진단이 내려졌다. 다행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10년 후 남편은 간경화증으로 간이식을 받아야 했다. 이 역시 우리는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이겨냈다. 남편이 젊고 건강한 간을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한 지 8년이 되었다.

남녀가 결혼해서 둘이 하나가 되어 살게 하는 것은 처음에는 ‘사랑’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서로 조심스럽게 지켜주는 마음으로 함께 산다. 마주보고 식사를 하며 (남편이/아내가)어제와 다름없는지, 말을 이상하게 하지는 않는 지, 덜 씹는지 …서로 개인 주치의 노릇을 하며 살다보니 50년이 되었다. 문제가 일어나면 무엇이든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두번 속으로 되뇌며 살다보니 50년이 되었다.

‘금혼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집 식구 10명이 모이니 정말 흐뭇했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모두 손에 잔을 들고 돌아가며 한마디씩 축하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7살짜리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여기 없었을 거예요. 결혼 50주년을 멋지게 맞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멋있게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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