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학으로 이룬 싱글골퍼의 꿈...연습만이 지름길”
입문 3개월만에 100 깨고 하루 10시간씩 연습, 1년만에 싱글로
왜소한 체격에 300야드이상 비거리, ‘존 델리’따라 별명 ‘서 델리’
“상대 배려하는 매너 중요, 떠들거나 내기골프 꼴불견”
파란 잔디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진정한 골프 애호가. 스코어보다는 라운딩 자체를 좋아하는 골프마니아. 독학으로 골프 입문 1년 만에 싱글을 기록한 프로 같은 아마추어 골퍼. 구력 24년. 핸디캡 3. 최고 스코어 4언더. 주인공은 제41대 뉴욕한인골프협회 서정일 회장. 장타가 특기라 ‘서 델리’로 불리는 서정일 회장의 ‘골프 사랑이야기’를 들어 본다.
■자수성가형
1955년 양띠인 그는 36세에 골프를 시작했다. 친구들 권유로 머리를 올렸다. 핸디를 받고 라운딩을 했지만 늘 꼴찌였다. 입문 3개월 만에 100을 깼다. 그래도 친구들의 벽은 높았다. 첫 3개월의 골프시즌이 끝나 5개월간 동계훈련에 돌입했다. 레슨을 받지 않고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 1개월은 드라이브만 연습했다. 그 후 아이언도 1개월 씩 나눠 몸에 익혔다. 다음해 골프시즌이 오자 보기플레이어로 실력이 늘었다. 친구들의 핸디도 따라 잡았다. 그 때부터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성장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1년 만에 전 세계 골퍼의 1%만이 달성한다는 싱글골퍼의 벽을 넘었다.
1992년 가을 브루클린 다이코비치 골프장에서 80타를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레슨 한 번 없이 순전히 독학으로 이뤄냈다. 라운딩을 한 지 1년 만에 80타를 기록하기 까지 노력과 끈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그는 독학으로 ‘싱글 핸디캐퍼’ 수준에 오른 골프에 관한 한 이른바 자수성가형의 골프마니아가 됐다.
그는 운동을 유난히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 축구, 배구, 탁구, 볼링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은 수준급이다. 중3때 배운 킥복싱은 고3때 이미 4단의 고수가 될 정도였다. 그는 타고난 체질에 꾸준한 연습으로 싱글골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전설의 프로골퍼 백상어, 그렉 노면을 가장 좋아한다. 열심히 꾸준하게 노력하는 선수가 그 이유다. 쉼 없는 연습만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길이라는 골프철학 때문이다.그는 “독학으로 이룬 싱글골퍼로서 연습의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다. 연습만이 고수가 되는 길”이라고 귀띔한다.
■나의 별명은 ‘서 델리’
그는 경기도 양평에서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까지 고향에서 자랐다. 그 후 서울 성동구 청구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중, 고교 학창시절도 그 동네에서 지냈다. 고향에서 의류생산판매를 하던 아버지가 서울로 터전을 옮겼기 때문이다. 60-70년대 학창시절은 참으로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는 금호동 언덕길을 오르는 야채상 수레를 밀어주고 얻어먹던 호떡의 꿀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한다. 군대 제대 후에는 유한킴벌리에서 일했다. 결혼은 1973년에 만난 동갑내기와 3년의 연애를 하고 아내로 맞이했다. 그 결실로 2남1녀의 삼남매를 두었다.
1989년 자녀의 교육을 위해 뉴욕으로 가족이민을 왔다. 첫 직장은 브루클린의 잡화가게. 첫 이민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91년 델리그로서리 도매상으로 옮겼다. 처음 배달을 하며 길을 잘 몰라 헤매고 다닐 때의 고생과 서러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4년간 세일즈를 하며 이민생활에 적응해 갔다. 그동안 땀과 고생으로 모은 돈으로 95년 맨하탄 33가에 델리가게를 차렸다. 그 후 20년 동안 한 곳에서 가게를 하고 있다. 지금 가게 운영은 주로 아내와 장남의 몫이다.
그는 ‘서 델리’라 불린다. 그가 20년 이상 델리그로서리를 운영해서 얻은 별명은 아니다. ‘서 델리’는 골프로 생긴 닉네임이다. 구력 24년인 그가 골프 입문 초창기 드라이버샷이 장기였다. 거리는 평균 300야드를 웃돌았다.
170cm의 왜소한(?) 체격에 300야드 이상의 비거리를 기록했다. 골프대회 장타상은 거의 그의 몫이었다. 롱 드라이버의 원조이자 비거리의 황제인 ‘존 델리’를 연상케 해서 ‘서 델리’란 별명이 생긴 것이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평균 270-280야드를 때린다. 엄청난 거리다.
그는 “드라이버는 샤프트가 길어 상대적으로 치기 어렵고 볼을 멀리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 스윙이 빨라진다. 우선 스윙 초기 서두르지 않고 리듬감을 타는 게 중요하다. 백스윙 때 가급적 왼팔을 굽히지 않고 스윙 아크를 크게 하는 게 장타 비결”이라며 “장타를 치려면 헤드 무게감은 느끼는 것과 스윙궤도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
그의 구력은 24년. 핸디캡은 3. 라운딩 당 평균 3-4개 버디를 잡는다. 언더를 기록할 수 있는 실력이다. 최고 기록은 4언더. 2000년 1월1일 브루클린 마린팍 골프장에서 기록했다. 홀인원은 1993년 애플모어 4번홀(140야드 정도). 내리막이라 피칭으로 풀 샷을 했는데 홀컵에 들어가는 행운을 안았다. 그 후 행운은 다시 찾아오지 않고 있다. 올해 각종 골프대회에서 벌써 3번째 메달리스트에 올랐다. 그동안 메달리스트 수상경력은 많아서 기억 못한다. 한 때는 토너먼트에 참가하지 말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의 골프 실력은 톱클래스다. 그렇지만 핸디와 상관없이 누구하고나 다 라운딩 한다. 실력 차가 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초보자들이 함께 해서 참 즐거웠고 배운 것이 많아 고맙다고 할 때는 보람마저 느낀다.
그는 골프매너를 중시 여긴다. 초보자에게도 “골프는 앞사람과 뒷사람,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까지 모두 배려해야 하는 에티켓의 스포츠”라고 강조한다. 매너를 우선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술을 마시며 큰소리로 떠들거나 지나친 내기골프로 게임에 방해를 끼치는 골퍼 등을 꼴불견으로 꼽는다. 골프의 매력은 “골프란 죽어 있는 공을 살려서 치는 운동이다. 매 홀마다 다 다른 상황에서 볼을 다뤄야 한다. 그러니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본인의 탓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또 골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로우싱글을 유지하는 비결은 사전에 골프장을 파악하며 자신만의 스코어카드 만들기에 있다고 귀띔한다. 골프장에 가기 전 기존 스코어카드에 있는 홀별 기준타수 대신 자신만의 홀별 목표타수를 적는 것이다. 난해한 홀은 보기로 적고 쉬운 곳은 버디를 적어, 실전에서 그에 맞도록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는 “골프는 기술이 10이면 정신이 90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면 스코어가 좋아진다. 하지만 골프를 즐기려면 스코어 보다는 자신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매너가 중요하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행복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그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을 골프의 장점으로 꼽는다. 라운딩을 하면서 나눠지는 이야기 속에 인생이 있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 삶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혼자만 즐기면 가족불화가 생길 수 있는 단점이 있어 가능한 골프는 가족과 함께 즐길 것을 권한다.
골프는 인생과 같다고 말한다. 라운딩을 하면서 한 샷 한 샷을 할 때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2남 1녀를 두고 있다. 모두 결혼을 했다. 장남과 둘째 아들은 각각 1명과 3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행복이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한다. 식구들을 보면 삶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4명의 손자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5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나 경제난에 신문배달을 하는 등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바람이 있다. 좋은 세상에 사는 만큼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며 더욱 열심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인사회 화합의 구심점 역할
올해 제41대 뉴욕한인골프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그저 골프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모인 운동단체라는 강한 인식의 틀을 벗어나 한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한 단계 전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한인사회 전체를 무대로 한인 아마추어 골프애호가들이 정정당당한 진검승부의 대결을 펼칠 수 있도록 최고 수준의 골프대회도 꾸미고 있다.
무료 주니어 골프강좌도 열어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밑거름 역할도 이어갈 계획이다. 그래서 현재 집행부에는 한인사회의 골프티칭프로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그는 골프를 통해 한인사회 화합의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그래서 더욱 한인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하고 있는 이유다.
처음 사람을 사귀는데 다소 낯설어하는 내성적 성격의 그는 일단 사귀고 나면 평생을 함께 가는 진국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를 하면서 날카로운 카리스마의 모습은 없었지만 온화하고 진득한 리더로서 상대를 품고 함께 갈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리더라는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연창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