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취재/애물단지 전락한 포트리 위안부 기림비
포트리 위안부 기림비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스태튼아일랜드 모 창고에 보관돼 있다.
수만 달러를 들이고도 한인단체들간 불협화음 때문에 설치되지 못한 뉴저지 포트리 위안부기림비가 3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더 이상 무용지물로 놔두지 말고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추진하는 다른 지역에라도 기증하는 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포트리 시정부가 연내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본보 4월3일자 A1면> 창고에 보관 중인 기림비를 재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3년째 창고에 방치…애물단지 전락
문제의 위안부 기림비는 지난 2012년 버겐 한인회 주도로 제작된 작품. 높이 5피트 규모로 만들어진 이 위안부 기림비는 당시 뉴욕한인회를 이끌던 한창연 회장이 사비 약 1만5,000달러를 내놓으면서 만들어졌다.
당초 2012년 11월 포트리 프리덤 공원부지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다른 한인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포장도 뜯지 못한 채 결국 스태튼아일랜드 소재 모 창고로 옮겨져 지금껏 방치돼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보관료만 현재까지 5,000달러가 청구돼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시 이같은 위안부 기림비 설립안이 추진되자 포트리 재향군인회와 포트리 한인회 일부 인사들이 기림비 설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반대의 근거는 당시 건립의 주체가 포트리 출신이 아닌 외부인 및 외부단체라는 점이었고, 특히 건립을 추진한 쪽의 이름이 기림비에 새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는 더욱 심화됐다. 이후 기림비가 아닌 ‘소녀상이어야 한다’는 포트리 재향군인회의 주장까지 나오면서 긴 싸움 끝에 결국 그 어떤 위안부 관련 기념 시설이 설치되지 못하는 상황이 3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포트리 시정부가 올해 안으로 기림비 건립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2012년 제작된 기림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포트리시정부 기림비 설치 재추진…“보관 중인 기림비 사용하자”
포트리시가 이처럼 기림비 설치를 재추진하고 나서자 버겐 한인회는 비용절감과 시간단축을 위해서라도 창고에 방치돼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사용하자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반대를 한 쪽의 주장과 달리 기림비에는 그 어떤 단체의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반대의 명분’도 사라졌다는 게 버겐 한인회의 입장이다.
실제로 본보가 확인한 결과 기림비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팔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잊지 말자’는 기본적인 문구만 있을 뿐, 위안부 기림비를 제작한 특정 단체나 개인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다.
버겐 한인회 김진숙 회장은 “위안부 기림비를 누가 세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포트리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의미있는 상징물을 세우자는 것일 뿐”이라며 “포트리 시정부는 누구든 의견만 모아 오라는 것인데 이미 만든 기림비를 사용하면 시간단축은 물론 금전적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2년 논란이 불거질 당시 소녀상 건립을 주장했던 인사들은 여전히 소녀상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포트리 재향군인회 측 김기정 전 재미월남참전전우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남의 동네에 외부 사람들이 왜 (기림비를) 세우고, 상대를 헐뜯고 모함하는 지 알 수 없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전 회장은 또 “현재 이미 만들어진 소녀상도 포트리에 있다”면서 당장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본보의 공개 요청에는 “보여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엔 세울 수 있을까
다만 이번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포트리 한인회는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싸움에 얽매이기 보단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포트리한인회측의 생각이다.
폴 윤 회장은 “당시 어떤 문제 때문에 싸움이 있었고, 논란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위안부 기림비가 실제로 존재하고, 당장 설치가 가능한 상태(usable)라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회장은 특히 각 단체의 이익이나 주장보다는 포트리에 기림비를 설치하는 게 “모두의 공동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함지하 기자> 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