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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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 (에바 오 / 사진작가)

2015-05-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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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다. 큰 스테이션왜건에 자기 짐을 몽땅 싣고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간다. 이것이 시작이다.

나는 아이들이 떠나간 방을 들여다보며 많이 쓸쓸해했다. 그리고는 졸업해 잠깐 집에 돌아와 있더니 결혼하면서 아주 집을 나간다. 나는 딸을 시집보내고 빈방에 주저앉아 몇 날을 울었다. 좀 더 잘 해걸… 후회도 하면서. 이어 둘째, 셋째도 같은 과정을 거치며 엄마 아빠 품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딸이 자기 자식들을 하나 둘 대학에 보내고 있다. 딸의 심정이 그때의 나의 심정과 같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저려온다. 생각해 보니 삶의 자연스런 흐름은 헤어짐이다. 갑자기 영영 헤어지면 너무 허전하고 슬프니까 이런 작은 이별들로 면역성을 길러주는 것 같다.


얼마 전 갑자기 “내가 산부인과를 언제 갔었지?”하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 차트를 보며 놀란다. 마지막 진료 받은 지“8년이 넘었네요”한다. 사실 그동안 “이 나이에 검사 받으면 뭐하나. 그냥 살만큼 살다 가면 되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건강에 이상이 있다 해도 수술이다 치료다 하며 부산떨지 말고 조용히 가야지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병원 문을 두들긴 것을 보면 뭔가 불안했던 모양이다.

담당 의사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여서 진료 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70대 노년이 되면 부부 사이는 젊은 시절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연인 사이라기보다는 아플 때 돌봐주고, 쓸쓸할 때 안아주는 사이, 서로 손 잡아주고 가슴 아파하면서 삶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10여년 전 같이 골프를 치던 친구 부부가 한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수소문해 알아보니 아름다웠던 그 친구가 당뇨병으로 인해 앞을 못 보게 되었다 해서 충격을 받았다. 감동적인 것은 그 남편이 10여 년을 한결 같이 다른 모든 일을 전폐하고 아내를 보살핀다는 것이다. 가끔 골프를 치고 싶으면 아내를 카트에 태우고 동행하며 일일이 설명해주면서 치고, 어디를 가던 아내를 꼭 동반한다고 한다.

이런 게 참 사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보살피던 아내가 먼저 떠나면 그 남편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80을 바라보게 되면 어차피 가는 길은 뻔하다. 부부 중 한사람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슬픔이 너무 크니까 조금씩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면역력을 길러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자식들은 자라서 부모 곁을 떠나고 남편(아내)도 언젠가는 곁을 떠난다. 나도 지금부터 혼자 사는 법을 연습해야 하겠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내가 먼저 가면 라면이라도 끓이고 밥솥 버튼이라도 누를 줄 알게 가르쳐야겠다.

병원에 갔다 온 날, 퇴근한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자못 심각하게 그날의 생각을 얘기하니, 남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형용키 어려운 연민의 이슬을 보는 순간, 나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연민과 사랑이 뒤섞인 쓸쓸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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