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성애가 뭐길래 (배광자 / 수필가)

2015-05-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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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 상에 떠도는 한 영상을 보고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까치 비슷한 새 한 마리가 두어 발은 될 만한 무시무시한 뱀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가 줄곧 뱀을 공격하고 뱀은 수세에 몰려있는 거였다.

뱀도 만만치 않아 머리를 고추 세우고 반격해서 새에게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도 그 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뱀에게 대들었다. 뱀은 도망가고 새는 다시 쫓아가고 하는 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는데 종내에는 뱀의 머리가 새의 뾰족한 부리에 쪼여 만신창이가 된 채 죽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새와 뱀의 싸움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죽은 뱀의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서 그 새의 새끼 시체가 나왔다. 그 새는 자기 새끼를 잡아먹은 그 뱀을 목숨을 걸고 응징했던 것이다. 한갓 작은 새의 모성이 이렇게 강한 데가 있다는 걸 보고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내포된 모성애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인류 역사 속에서 모성애만큼 감동과 찬탄을 금할 수 없게 하는 사례들도 드물다. 그만큼 모성애가 아름답고, 비감하고 또 고결해서이리라.

우리는 모성애를 이야기 할 때 먼저 자녀를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는지, 또 양육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지, 마지막으로 자식이 얼마나 잘되게 양육하는지를 평가하고 모성이 위대하다고들 말한다.

또한 모성애는 가족 안의 갈등을 녹여 주는 용매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는 접착제와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 중심 문화 속에서 아내나 남편 또는 아이들이 각자 개인 보다는 가정의 단합을 중시하고 그 단합의 가운데에는 가부장이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여성의 위상이 크게 향상된 지금은 그런 관념이 많이 퇴색해 버려 은퇴한 노년의 가장들 위상이 말이 아니다.

삼식이니 비 맞은 낙엽이니 하는 등의 노년에 할 일 없는 남편을 두고 하는 농담들이 횡행하고 있다. 심하게는 동창모임에 다녀온 부인이 침울해 해서 남편이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 모임 가운데 남편이 살아있는 X은 나밖에 없었다”고 볼멘소리로 대답하더라는 써늘한 우수개 소리도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나는 좀 엉뚱한 발상을 해 본다. 여성이 아닌 어머니가 갖고 있는 모성애가 가정의 단합과 평화를 위해 가부장의 권위를 이양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혁명하자는 주장 같아서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남편이며 아버지인 남성들이 노년에 가족의 따듯한 보살핌 속에서 안정과 휴식을 찾고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과거에는 늙고 병든 남편을 대부분의 아내들이 인습에 의해 의무적으로 보살피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열부라고 해서 표창도 하고 부추겼지만 지금 세대에 의무로 그렇게 하라면 납득하고 진정성 있게 실행할 여성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모성애의 속성이기도 한 측은지심을 발휘해서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측은지심이 늙고 지친 남편들에게도 확장되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부부애란 영원한 게 아니라서 중간에 깨지는 경우도 많고 특히 요즘에는 황혼이혼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새 한 마리가 보여준 것과 같은 희생적인 모성애, 맹자의 어머니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현명하고 단호한 모성애, 그리고 따듯하고 헌신적인 모성애, 때로는 위대하기까지도 한 모성애는 마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 모성애로 가족 모두를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의 아내들이여, 남편을 모성애로 감싸라! 세상의 남편들이여, 마누라의 모성애를 자극하라! 모성애는 동의보감에도 없는 가화만사성의 비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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