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에도 용량이 있습니다 (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2015-05-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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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 한다’고 했다.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못 참아 실수를 해본 사람이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꽉 찼을 때는 평소에는 참아지던 일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짜증이 밀려와 괜히 트집을 잡거나 말이 곱게 나가지 않게 된다.

밖에서는 애써 잘 참았는데 집에 와서 결국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에게 스트레스와 화가 다 쏟아질 때도 있다. 그러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더니, 스트레스란 녀석도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안전하다 느끼는 곳에서 가차 없이 튀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마저 든다.

적지 않은 내담자들이 “계속 참았어요. 근데 이제 더 이상 참아지지가 않아요”라고 한다. 처음에는 충돌을 피하는 최선의 길이 참는 거라 생각해서 억울하고 화가 나도 참았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참아지지 않고 작은 건드림에도 감정이 수소폭탄처럼 폭발한다. 때로는 계속적인 체념과 포기로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아! 마음에도 용량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무한대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스트레스가 목까지 꽉 차면 더 이상 담을 공간이 없으니 엉뚱한 곳에서 원치 않는 방법으로 폭발되어 나온다.

그래서 내담자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나만의 스트레스 분출법이 있나요?” 이 질문 앞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선뜻 대답을 못한다. 참는 건 해봤는데, 어떻게 잘 뽑아내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한 방법으로 마음의 용량을 넓히며 내공을 쌓을 수 있을까?첫째는 본인에게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그 중에 스스로 자초한 스트레스가 있다면 그것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가끔 너무 많은 일과 사업을 한꺼번에 벌이고 결국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치여 지쳐있는 이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오르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스트레스와 맞바꾼다. 혹시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일부가 내가 자초한 것이면 삶의 과감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 살면서 상황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가 더 많다. 학교와 직장에서의 경쟁, 피할 수 없는 가족 관계의 갈등, 다가올 시험 준비, 아픈 가족 돌보기 등은 피하기 힘든 스트레스들이다. 즉 상황 자체의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다. 이럴 때는 특히 스트레스 분출구(vent)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스트레스 정도를 잘 관찰하면서 자신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퍼내며 참을 수 있는 용량을 넓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게임이나 쇼핑 또는 비디오 보기나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법으로 점차 바꿔나가길 권한다. 혼자 산책하거나 여행 가는 것, 감정을 쏟아내는 글쓰기, 운동, 좋은 사람과의 건전한 수다, 신앙생활 등도 건전한 분출구가 될 수 있다. 다만, 나의 분출구가 다른 이에게 위험하거나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됨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를 퍼내며 ‘난 지금 스트레스를 밖으로 분출하고 마음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 인식을 하는 것이 좋다.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애쓰는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하고 있는 걸 인식하면 좀 더 잘 견디고 참을 수 있다.

참을 인(忍) 한자를 보니 칼날 인(刃)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있다. 즉, 마음에 칼이 얹혀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스트레스, 화 등 해를 끼치는 감정들을 마음 위에 얹혀있는 칼로 가지치기 하듯 잘라내라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비춰진다. 마냥 눌러서 참는 수동적인 참음에서 스스로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참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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