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커네티컷/ 칼럼:‘함께’ 하는 이웃으로

2015-04-24 (금)
크게 작게
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부활절을 맞아 객지에서 각자의 일로 바쁘게 살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 왔다.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던 날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 방을 새로 정리하는 아내의 손길이 경쾌했다.

겨우내 비어 있던 식탁 위의 키 작은 꽃병에는 노란 튤립이 탐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묵은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던 냉장고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싱싱한 과일들로 가득 채워져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했다. 아내의 발걸음이 옮겨 질 때마다 닫힌 창문 너머로 봄이 오고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이미 아내의 마음은 행복한 봄단장을 한 듯 했다. 나도 덩달아 벗꽃처럼 가벼웠다.

지금으로 부터 꼭 1년 전,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던 그 계절에, 우리 모두 밤을 지새우며 참담하게 지켜봐야 했던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오늘까지도 사랑하는 딸의 흔적을 찾지 못해 아직 유가족이 되지 못한 어미가 눈물을 흘리고 있고, 진실을 밝혀 달라는 유가족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외로운 메아리가 되어 겨우내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떠돌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기억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모습이 언론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삭발한 유가족들의 눈물을 보며 성난 민심은 결연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슬픔을 공유한 사람들과 또 다른 진영의 사람들이 쏟아 놓는 언어는 서로에게 예리한 칼날이 되어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냈다.

또한 일부 언론들의 보도는 또 다른 편 가름을 부추기며 이념으로, 진영논리로, 지역 색으로, 또 세대로 갈라져 서로에게 더 높은 성벽을 쌓으며 소통의 부재를 심화 시켰다. ‘큰 고통 앞에 누구도 중립적일 수 없다’ 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고통을 외면하기에는 그들이 가진 아픔이 너무 크고 깊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TV에서는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서 있던 추모 미사를 보여주었다.

알프스에 추락한 독일 여객기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였다. 이 사고는 정신 질환자인 부 조종사에 의한 자의적인 추락 사고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명확하게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끔찍한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의 사고를 보며 만약 같은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해 전 인근의 시골 초등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 무고한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었을 때, 서둘러 사고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이 유가족들을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처음부터 정부가 진실을 밝히는데 더 노력하고 슬픔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희생자 유가족과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었더라면 상황은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신뢰 속에 슬픔은 함께 공유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불신으로 서로가 벽을 쌓을 때 치유 대신 상처와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남을 뿐이다. 비록 원인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을 지라도 그 불행을 교훈삼아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출구를 찾았을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사람들 가슴에 매달린 노란 리본은 이제 애도의 뜻을 넘어 ‘함께 ‘ 하겠다는 의지이며 표현이 되었다. 봄을 기다리던 수선화가 마당 끝에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노랗게 빛난다. 동네 입구에 계절을 알리는 개나리의 화사한 노란 빛깔이 왠지 안쓰럽다. 이렇게 봄은 우리 모두에게 아픈 기억을 주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날 부터 다시 아이들이 돌아 올 날을 준비한다. 마침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아직 깊은 바다 속에 있는 희생자들이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