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머니엔 항상 처방전...받은 복 이젠 나눠야죠”
▶ 70대중반에도 의료현장에서...건강 주심에 감사
<사진 천지훈 기자>
7일간 처방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의료 봉사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지역사회와 한인커뮤니티 지도자로 열심히 살아온 이상철 신경내과 전문의, 그의 이민 51년사를 펼쳐본다.‘
▲의사가 된 것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철은 1964년 한국 가톨릭 의대를 졸업, 1964년 인턴과정을 위해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한 것이 그의 이민사 51년의 시작이다.
“효자동 동네친구 4명이 미국에 가고 싶다는 뜻을 같이 했다. 이왕 공부할 바에야 집중적으로 해보자 하여 머리 박박 깎고 다같이 절로 들어가 3개월간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모두 미국으로 왔는데 친구 데이빗 김은 정형외과의로 캘리포니아 지역 유지가 되었고 한 친구는 일반외과의로 캘리포니아에 살다가 작년에 사망했고 또 한 친구는 엑스레이과 전문의인데 은퇴하여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
그가 풀어놓은 이민 보따리의 시작은 더 큰 세계를 향한 젊은이들의 포부와 열정이었다.“2남5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조흥은행 은행장이었고 친가, 외가에 은행원이 7~8명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55세때 정년퇴직 하는 걸 보고 놀랐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은퇴라니, 그래서 나는 절대 은행가가 되지 않겠다, 내 일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하겠다고 결심했다. 의대를 갔고,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풀타임으로 계속하고 있다.”
젊은 이상철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세웠고 착착 진행시켰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저지쇼어 신경내과 그룹의 창설회장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맘모스카운티 오피스에서, 토요일은 5명의 의사들이 격주로 환자를 본다.
▲한 단계씩 착실하게
이상철은 워싱턴 DC의 프리드맨 병원 인턴생활 1년 후 NYU의대 및 주립병원 신경내과 레지던트, 컬럼비아대 신경내과 연구원, 브루클린 메디컬 센터, 퀸즈 일반병원 내과, 74년도부터 럿거스 의과대학 신경내과 교수, 저지쇼어 대학병원 외래전문의 등 미국에서 한발 한발 인턴, 레지던트, 대학병원 임상교수, 개업의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71년~74년까지 컬럼비아대에서 한 리서치는 보람 있다. 개업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나 리서치는 때가 있다. 장기적 목적으로 리서치를 한 것이 현재 많은 도움이 된다.”
리서치는 환자가 목뼈에 신경이 눌려 손이 안돌아갈 경우 일상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시 마비 위험이 있다면 이 수술이 꼭 필요한 지, 방지법은 없는 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는 또 라임병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사는 동네에 숲이 많아서 자연히 라임병 환자를 많이 보게 되었다. 라임병은 언제 얼마나 오랫동안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가가 중요하다.
▲미주한인의학협회(KAMA) 제23대 회장
이상철은 전 미주 한인의사들 모임인 미주한인의학협회(KAMA)창립멤버로 제23대회장을 지냈다. 카마는 매년 12월말 미전역을 돌아가면서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한인의사 1,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그는 카마가 출간한 ‘재미한인의사 1백년사’의 6인 편찬위원 중 한사람이었다.
“미주지역에 1, 2, 3세 한인의사들이 2만 명 정도다. 3월14일 열린 모임에서 2세들이 주축이 되어 일하는 것을 보고 참 기분이 좋았다. 이태리, 중국, 필리핀, 인디언 등 각 민족마다 의사들 모임이 있다. 카마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또 뉴저지 맘모스카운티 메디컬 소사이어티의 회장으로 주정부 및 지역정치인들과 돈독한 교류를 쌓는 한편, 전 미주한인신경내과학회를 창설했다. 대한민국 신경내과학회 공로상, 1991년 해외동포 국무총리상, 2001년 엘리스 아일랜드 상을 받았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카마학술대회에서는 초대회장 이름을 딴 ‘닥터 최제창 박사상’도 수상했다.
▲한인사회 및 주류사회 참여
이상철은 현직의사로서 드물게 뉴저지한인회 회장을 지냈다. 1979년 제4대 뉴저지한인회(전 뉴저지 총연) 4대회장으로서 주정부와의 긴밀한 유대를 통해 미국사회 참여로의 물꼬를 텄다. 1980년 브랜든 번 뉴저지 주지사 시절, 8월 15일을 한국의 날로 제정 선포(수년간)하게 했고 뉴저지 소수민족축제에 한인회가 참여하는 전통을 쌓았다.
뉴저지는 지역특성상 넓게 퍼져있어 타 지역처럼 집중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지역한인회를 강화 발전시켰다. 임기 중 기존 미들섹스, 트렌톤, 허드슨, 맘모스 4개지역회에 모리스, 벌링턴, 애틀란틱 등 3개지역회가 추가되어 모두 7개 지역회가 존립했다. 미들섹스 지역회는 중부뉴저지한인회로, 트렌톤 지역회와 벌링턴지역회는 대남부뉴저지한인회로, 허드슨지역회는 북부뉴저지한인회, 맘모스지역회는 중앙뉴저지한인회로 명칭이 바뀌었고 모리스지역회는 사라졌다가 194년 서부뉴저지한인회로 창립됐다.
그는 본업이 의사였기에 동포들의 건강에 관심을 보여 임기 중 무료건강진료, 경로사업 등에 힘썼다. 또한 이상철은 4년 동안 소수민족 자문위원으로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한국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렸다. 회장시절 짐 플로리오 주지사와 함께 봄·가을로 열리는 소수민족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한국 음식, 태권도, 한복과 장구 등 한국문화 홍보 및 인원 동원에 힘을 보탰다.
▲삶도 여유 있게
“어려서 어머니가 화초를 좋아하셔 집안에 항상 꽃이 있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길러진 것 같다. 꽃 사진을 비롯 자연경관을 40여년 전부터 찍어왔다. 매년 3월말이 전국의사의 날이다. 각 병원에서 의사들을 대접하여 식사를 제공하는 날이다. 밥만 얻어먹지 말고 우리도 뭔가 보여주자 하여 만든 것이 14년 전부터 열고 있는 의사들의 미술전이다. ”
3월26일부터 5월18일까지 뉴저지 냅튠 저지쇼어 대학병원에서 열고 있는 전시회에는 5개 병원 25명의 의사들이 참여해 회화, 조각, 사진 세 분야의 작품 15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상철은 전시회 기획부터 시작하여 이번 전시회에도 태평양 갈라파고스에서 촬영한 14점의 자연경관을 출품했다.
“환자를 진료하느라 늘 바쁜 가운데서도 틈날 때마다 해온 작품들이다. 의사 자신과 환자들의 정신적인 치료는 물론 병원을 찾는 모든 이에게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마련했다.”
그가 사는 곳은 뉴저지 맘모스카운티 바닷가다. 40년째 돛단배 타기를 즐기고 있는데 매년 독립기념일이면 2주 휴가를 내어 친구들과 함께 6시간 거리인 맨하탄 자유의 여신상까지 운항한다. 그곳 부둣가에 정박하여 낮에는 워터 택시를 타고 로우 맨하탄 구경이나 식사를 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긴다.
▲늘 주머니엔 처방전이
이상철은 간호사 출신 다이애나와의 사이에 두 아들 데이빗과 빌을 두었고 손녀가 한명 있다. 큰아들은 비주얼 아티스트로 현재 의학 관련 모니터링을 공부하고 있고 둘째아들은 마취과 의사다.
“환자들이 나를 찾아주니 고맙고 친구들 복도 있고, 많은 복 중 가장 고마운 것은 건강이다. 과거에는 골프를 치기도 했으나 시간을 많이 빼앗겨 집 근처 애틀란틱 클럽에 가서 운동 한다. 모든 것 다 받았으니 나눠주는 일이 남았다. 어머니가 권사, 아버지가 장로로 배냇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지역한인들과 맘모스 은혜연합감리교회 창립을 하여 수년전 장로로 은퇴하였다. 초창기부터 주일 미션클리닉을 열어 보험 없는 교인들에게 의료봉사를 한다. 알콜, 약, 담배로 천성적인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된다. 건강 유지는 본인 책임이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는 처방전, 그에게 처방전을 받는 이는 병이 금방 나을 것 같다. 환자의 형편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의 애민(愛民)정신이 담겨있기에. <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