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위에서 살아있음 느껴...도전하는 배우되고파”
▶ 연기.춤에 대한 어릴적 막연한 동경이 사춘기 겪으며 열망으로
부모 반대와 경제적 어려움에도 꿈 포기할 수 없어
한인극단.미국 오페라 무대서 다양한 경험
작은 배역에도 최선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인극단 MAT에서 다양한 역을 특징 있게 소화하고 있는 여배우가 있다. 그는 작품캐스팅 때마다 연출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그리고 노래면 노래 등 배우로서 모든 끼를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서 단편영화도 직접 만든 연출가로서의 다재다능한 실력마저 갖추고 있다. 주인공은 한국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뉴욕에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배우활동을 하고 있는 강현주(32)씨이다.
▲가슴 속에 품은 배우의 꿈
강현주. 그는 1982년 서울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에 흥미와 관심이 있었고 연기, 춤, 노래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자란다. 사춘기를 겪으며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지면서 뮤지컬 배우의 꿈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점점 더 커져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원하는 평범한 삶의 범위를 벗어나 동네 문화센터를 찾아가 뮤지컬 배우 겸 안무가를 만나 재즈댄스를 배우기 시작한다. 시간이 가면서 춤을 출 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재즈 수업의 달콤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연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 후 고3때 연기, 연극을 업으로 삼고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결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어린 시절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어머니가 가정 형편과 할아버지의 반대로 간절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픔을 딸에게 또 다시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삶을 권할 뿐이었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 없이 연극영화과 원서를 쓰고 실기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부모님은 연극영화과를 지원하는 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고 재수도 허락할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 연기의 꿈을 찾아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됐다.
▲꿈 하나에 목말랐던 시절
그는 재수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찾게 된 연기 웍샵 그룹을 통해 돈을 들이지 않고 연기 트레이닝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몇 번의 연기레슨을 통해 어렴풋이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트레이닝을 하면서 다른 모양의 자유로움으로 표현되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박정환 연극배우를 만나 조금 더 연기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여러 배우들과 함께 예술집단 ‘마토’를 창단하게 됐다. 그것이야말로 프로 대학로 배우들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비록 배우로서 공연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프로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공연을 매일 보면서 어떤 책에서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참 현장이었고, 참 공부였던 것이다.
그는 “돈을 모아가며 재수생활을 할 때 주변 언니, 오빠들이 사준 문제집으로 공부를 했고, 대학에 간 친구들이 종종 찾아와 밥을 사주고 영화도 보여줬습니다. 비록 힘들었지만 꿈 하나에 목말랐던 그 시기들이 마냥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
그는 서경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간 만큼 더욱 간절해진 마음으로 대학생활에 빠져든다. 1학년 새내기 때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국립극장에서의 데뷔가 예상치도 못한 채 찾아왔다. 주요 배역을 아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당당하게 서게 된 것이다.
그는 2학년 때 ‘가장무도회‘에서 극을 끌고 가는 중심역할인 페르닐라라는 배역을 맡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때마침 엄마, 이모, 언니가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와서 자신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는 23세부터 70세까지 한 연자의 일생을 연기해야하는 ‘작은 할머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가정형편으로 1년 휴학 후 3학년으로 다시 복학을 해서는 학과수업과 공연 그리고 영화작업을 병행하면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6개월 동안 교생실습을 나갔다. 학생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영화에 출연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무대예술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대학생활의 막바지에는 졸업 작품의 촬영을 앞두고 쉽게 풀리지 않는 작품적인 고민과 진로고민으로 다른 단계의 성장통을 겪어야함도 깨닫게 됐다.
졸업 작품인 단편영화 ‘glass’와 ‘Don’t know’는 작품성도 인정받고 어느 정도 마니아층도 형성됐다. 졸업 후 그는 무대예술을 만끽하고 싶었고, 교생실습을 통해서 느꼈던 연극교육에 대한 궁금증과 목마름을 따라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대학에서는 많은 고민들 속에서 울기도 하고, 잠 못 이루기도 하고 밤새 연기와 연극을 주제로 토론하며 지냈다. 밥을 잘 먹지도 못했고, 잠을 많이 잘 수 없었어도 그 때를 회상하면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 이었다”고.
▲가르치며 배우고
그는 졸업 후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자주 찾아왔다. 입시 연기학원에서 연극영화과를 가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그룹레슨을 했다. 몸은 이미 사춘기지만 정신연령은 7-8세에 멈춘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노래와 움직임과 연극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소통하기도 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문화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수련관에서 국가의 지원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을 가르치면서 함께 한 시간들은 지나고 나니 그렇게 그립고 행복할 수 없다. 또한 예술은 가진 자들이 소유할 때보다는 모두가 함께 나누어 공유할 때 더 값지며 아름다운 결과물들로 나타남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연기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영역임을 체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역시 다시 순수한 연기에 대한 열정을 꺼내볼 수 있게 됐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수업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소통의 고리가 생겨서 수업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이별을 해야 했던 순간들은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고 귀띔한다.
▲온 힘을 다해 불태우고 도전하는 배우
지난 2007년 낯선 뉴욕으로 무작정 도망치듯 ‘비전 트립’에 나섰다. 매일매일 맨하탄 브로드웨이를 걸으며 그렇게도 꿈꾸던 뮤지컬 공연들의 홍수 속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그렇게 5개월의 시간을 공연과 현실적인 삶을 경험하고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이듬해 뉴욕을 다시 찾아왔다. 한국을 떠나올 때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연극이 아닌 삶을 살아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왔기에 의도적으로 뮤지컬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대에 대한 목마름으로 한인연극집단을 찾아 나섰다. 처음엔 ‘뉴욕품바’ 공연에 참여했다. 무대선 여자아이, 일본순사, 품바의 아내 등 여러 배역을 연기해야 했다. 그 후 Vocal production NYC라는 단체에서 Verdi 작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에 출연했다. 실력 있는 미국 성악가들 속에서 주요 배역은 아니었지만 그들과의 작업은 새로운 출발이었다. 미국 오페라 프로덕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한인극단 MAT와 인연을 맺고 창작뮤지컬 ‘엄마엄마’에서 이선자 역을 맡게 됐다. 전형적으로 옳지 못한 입만 살은 교회를 다니는 집주인 역할이었다. 복잡하지 않고 심플한 캐릭터라서 그것을 좀 더 극대화 시켜서 더 얄밉게 보이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이 끝나고 많은 분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그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늘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마음에 더욱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배우로서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고, 유명한 배우가 된다면 더 없이 감사할 일이고 영광스런 일이지만 그것은 그가 그리는 꿈이 아니다. 그는 아주 작은 무대나 배역, 때로는 정식 연극이 아닐 수 있고, 짤막한 영상 가운데 한 장면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도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연극, 노래, 춤 혹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며 그 작품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감동하고 때로는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돌아보며 살아있음을 느낄 때 그는 행복하다. 그래서 그는 내일을 염려하며 오늘을 헛되기 보내기보다는 오늘 이 순간을 온 힘을 다해 불태우며 도전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자 열정을 태우고 있다. 그에게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는 가히 아름다운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연창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