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잘 아는 ‘꽃밭에서’의 노랫말이고, 권길상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다. 하루는 LA에 사시는 권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그 쪽에 갈 일이 있는데, 그 때 귀교의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서...”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후 계속하여 서로 의논하면서 행사내용을 결정하였다. 이윽고 2013년 10월19일 ‘한국동요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강당에 모였고, 권 선생님은 그들을 마주하고 앉으셨다. 음악교사의 지도에 따라 우리 모두는 꽃밭에서, 둥근달, 바다, 어린이 왈츠, 과꽃을 노래 불렀고, 권 선생님은 간간이 노래에 관계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다가 질문이 나왔다 “왜 동요를 작곡하게 되셨어요?” 이에 대한 권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노래를 즐기고, 어린이를 사랑하다보니, 평생 동안 어린이 노래를 만들고, 어린이를 가르치며 한평생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다 제가 받은 큰 축복입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학교에 보관된 행사 기록을 찾아보며 다시 한 번 그 날을 되살린다.
“어린이가 좋아서 어린이를 사랑하다보니...” 어린이노래만 작곡하셨다는 말씀이 생생하다. 화단이나 수목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어린이의 노래꽃밭을 가꾼 정원사는 권길상 선생님이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많은 한국인이 잘 알고 있는 동요 150여곡을 남긴 권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노랫소리를 높인다. 그 분은 ‘내가 받은 축복’이라고 하셨지만 그 노래꽃밭은 우리들이 받은 축복이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부수되는 생명체인가? 어린이가 제대로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데 공헌한 분은 소파 방정환님이다. 그는 1923년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였고, 그로부터 전국에 어린이 운동이 일어났으며, 그는 ‘어린이 날’을 정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 사업은 어른을 위한 것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동화는 소설보다 쉽고, 동시는 일반 시보다 쉽고, 동극은 연극보다 쉽고, 유치원은 대학보다 소홀히 다루어도 되는 교육기관인가?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의 관념이 이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에 따라서 어린이 관계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낮게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요작곡에 일생을 바치신 권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귀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정열을 쏟으셨으며, 항상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일로 느끼면서 활동범위를 넓히셨다. 뉴욕에서 본교를 방문하신 일도 이곳저곳의 어린이들을 골고루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 선생님은 자신의 행복한 일생을 스스로 가꾸려고 여러 모로 노력하셨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의 평가 때문이다. 이왕이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다.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이에 관계되는 일은 그 방향에 따르지 못한다. 이런 사회 인식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생동안 실행하신 분은 확고하게 ‘내 생애’를 가지셨다.
그분이 지으신 동요에는 굳은 마음과 한국적인 정감이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애창곡이 된 것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이 노래를 부르며 항상 선생님께 감사드리겠다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