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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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김옥교 / 시인)

2015-03-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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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을 때 아이들의 나이는 11살과 13살이었다. 남편은 그때 겨우 29살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큰 짐을 젊은 그에게 짊어지게 했다.

남의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보통 팔자가 센 것이 아니다. 잘해주어도 욕먹고 못해주면 더 욕을 먹는다. 자신의 피붙이처럼 똑같이 해주어도 무언가 늘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남편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서 저러나’ 하는 조금 섭섭하고 조금은 야속한 적이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 왔을 때 집안은 늘 시끌벅적 했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중간에서 한국말로 통역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언어 문제로 답답하고 갈등이 생겼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이웃에 살던 친구의 남편이 귀가 번쩍 뜨이는 충고를 해주었다.

“야단을 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해! 무관심이 정말 무서운 것이거든, 내 의붓아버지는 내게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어서 늘 냉정했어. 그게 사람을 잡는 거야. 난 17살 때 결국 집을 뛰쳐나왔어”나는 가끔 그 충고를 생각한다. 관심이 있어서 사람들은 참견하고 야단도 친다. 관심은 사랑의 첫걸음이다.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 손주들만 보아도 그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삼촌과 숙모들에 싸여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란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내 아들들도 자신의 아이들을 기르게 되었다. 얼마나 우리 모두가 힘든 세월을 지나왔는지, 그리고 자신들을 기른 이국의 아버지가 얼마나 감사한지 다들 알고 있다.

“엄마! 대디도 잘 계시죠? 자주 연락을 못해 미안해요. 그래도 엄마는 우리들 마음을 알지요? 우리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감사해 하는지?”그렇게 아들들이 말할 때마다 나는 야단을 친다.

“사랑은 액션이야. 말만 하면 뭐하냐?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나쁜 놈들!”그렇게 말하고 툴툴대도 속으론 기쁘다. 잊지 않고 가끔 전화를 해주는 그들의 마음씨가 기특하다. 남편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 생일날이나 아버지날, 크리스마스 같은 때, 전화로나 카드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작은 선물을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막내가 남편에게 아들이요 유일한 친구다. 아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여서 우리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이 안되면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와서 손봐준다. 보통 때는 말을 잘 안하는 사람이지만, 막내만 만나면 남편의 얘기는 끝이 없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

“푸어 대디!” 아이들은 남편을 늘 불쌍하게 생각한다. 남편은 젊어서 일을 할 때 변변히 점심 한번 마음 놓고 사먹은 적이 없다. 늘 브라운 백에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다녔다.

“대디는 정말 우리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어요.” 아들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우리 나이가 됐을 때 그들은 지금의 우리 심정을 알까. 그것이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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