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은 아름다워 (루시아 두 / 웨스트 코비나)

2015-03-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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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지역 여성 합창단에 입단해 매주 목요일이면 열일 제치고 나가 노래 배우고 우의를 다지는 재미에 빠져있다. 누구는 골프치는 재미에 살고, 누구는 당구치는 재미에 살고, 취향과 소질대로 공부도 하고 취미 생활도 제 각각이지만 난 노래 부르는 게 제일 좋고 적성에 맞아서이다.

우리 합창단원의 평균 연령은 70쯤 된다. 60세 후반부터 80세 중반까지 고루 섞여 여가시간을 뜻깊게 보내고 있다. 지휘자는 40대 젊은이지만 이런 노인들이 열심히 배우고 즐기는 모습이 귀엽고(?) 고맙단다.

우리가 늙어서 하지 못할 일이란 단지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일뿐 그외에는 못할 것이 없다. 머리를 쓰는 일, 손을 쓰는 일 등은 그 기능이나 속도에서 젊은이들에게 질 까닭이 없다. 우리 합창단원은 목소리가 나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한은 못할 이유가 없기에 주름살도 흰머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


또 이곳 노인학교의 여러 프로그램 중 탁구반이 있는데 80 넘은 할머니들도 참여해 열심히 치신다. 평소엔 수전증으로 손을 떠는 분이 일단 탁구대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젊은 시절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는 게 얼마나 멋있고 젊어 보이는지 모른다.

며칠 전 신문에서 ‘어모털’ 이라는 신조어가 뉴욕에서 시작됐다고 읽었다. Mortal 앞에 A 를 붙여 Mortal에 저항이라도 하듯, 늙음의 벽에 갇혀 갈 날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늙음을 비관하지 않고 삶을 새로 시작하는 나이로 삼아 자신감을 갖고 새롭게 산다는 생각, 이런 사상이라 한다.

늙었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니라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어느 30대 여성의 글을 읽고 깨달았다.

“중년의 복부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네요.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봤으면 좋겠네요. 그만큼 살아남았다는 거잖아요, 저는 한 번 늙어 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살아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네요.”한번 늙어 보고 싶다는 그 말이 너무나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 기죽지 말고 늙음을 자랑으로 알고 훈장으로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뜨겁게 솟는다.

우리 합창단은 지난 가을 첫 연주회를 가졌고 다음해 봄쯤 또 연주회를 할 계획으로 매주 모여 열심히 목청을 돋운다. 첫 연주회에서 너무 뜨거운 찬사를 받아서 부담감은 좀 있지만 더 잘 하겠다는 마음들로 열심을 다 한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볼 수 있는 시력이 아직 남아있어 악보를 읽을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악보를 보고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가. 어느 나라 말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이 땅은. 얼마나 복받은 우리인가. 가르쳐 주는 지휘자가 있고 피아노를 쳐 주는 반주자가 있음은.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고, 뜻을 같이 하는 또래 여성들이 수십명 모일 수 있음은.

우리는 순간순간을 아끼며 행복하게 모이고 노래하고 즐긴다.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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