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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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를 위한 변명

2015-02-23 (월)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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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판매중인 휴대전화의 불량률이 높다는 보고를 받은 이건희 회장은 시중에 판매한 15만대 전부를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거나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회수한 모든 제품들을 공장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소각토록 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95년 당시로는 큰 금액인 150억원에 달했다.

다섯 가지 모델 중 네 가지는 아예 생산을 중단시키고 신제품 개발로 대체했다. 당시로는 손해가 막대했지만 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간 결과 4위에 머물렀던 시장 점유율을 3년 만에 1등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그의 에세이집에서 밝힌 내용이다.

뉴욕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에 탑승한 이 회사 조현아 부사장은 승무원이 제공한 서비스가 회사의 매뉴얼에 맞지 않는다고 야단을 쳤다. 급기야 객실 책임자인 사무장이 달려 왔지만 메뉴얼북을 열지 못해 오히려 크게 질책만 당하고 이륙을 위해 게이트를 이미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두 내용의 공통점은 경영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자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극단적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은 고객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일류 회사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지만 대한항공은 분노한 국민들의 모진 비난 속에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언론들이 조현아에게 유리한 발언은 모두 변명이나 제 식구 감싸기로 폄하하고 불리한 증언들만 크게 보도해 조 부사장을 여론재판의 중심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아의 해명과 사과는 오히려 성난 민심의 역풍을 맞고 새해를 몇 시간 앞둔 구랍 구치소에 갇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검찰에 출두하는 그녀를 향해 퍼붓는 시민들의 인격 모독적 발언과 뒷덜미를 잡고 흔드는 야비한 모습은 6.25때 지주들이 당했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잘못을 했다면 재판과정에서 밝혀질 일이고 결과에 따라 응분의 처벌을 받으면 되는 거지 아이들의 어머니인 여성에게 공개적으로 가한 인격 말살은 문명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야만적 행동임이 분명하다.

지금 한국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경제가 예전 같은 고속성장은 아니어도 한국은 잘 사는 나라임이 분명하지만 국민의 행복도는 경제 성장과 반대로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개인적 문제까지도 재벌과 정부 탓으로 돌리는 비이성적 현상이 늘어남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만 몰두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상대 당이나 당시 정권의 무능 탓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 결과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문제를 구조적 모순으로 돌리고 그 중심에 재벌들을 지목해 비난의 화살을 돌린 원인도 클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조현아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희생양이었을지 모른다. 재벌의 딸로 태어난 덕분에 40대 나이로 세계 굴지의 항공사 부사장에 오르고 머리까지 좋아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 학교들을 졸업했다. 거기다 늘씬한 미모의 소유자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질투할 완벽한 갑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잡한 순환적 관계로 연결돼 있어 내가 을도 되고 갑이 될 때도 있는 것이지 갑과 을이 항상 고정돼 있는 건 아니다. 사무장에게 부사장은 갑일지 몰라도 공권력과 대중 앞에 조현아는 을 중에서도 가장 힘없는 을이었음을 우리가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조 부사장이 처신을 잘못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상사로서 조금 너그럽게 직원들을 배려했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자사의 비행기 안에서 상사와 부하 간 발생한 문제라면 특정 기업의 내부문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기업 내 조직에서 발생한 사안을 문제 삼아 개인에게 융단폭격식 언어폭력을 집단으로 가하는 사회는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직원들의 인격이 존중 받아야 마땅하듯 조현아의 인격도 똑같은 무게로 존중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그녀의 잘못보다 더 큰 무게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범한다. 특히 40대는 열정이 큰 만큼 실수도 많이 하는 시절이다. 한 번의 실책으로 영원히 사회로부터 매도된다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제는 한국 사회가 조현아를 용서해 줘야 한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결코 강할 수 없고 건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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