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화와 떨림 (김홍식 / 내과의사)

2015-0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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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갈 기회가 있었다. 여간해서 스스로 가는 여유를 내지 못하는데 어떤 분이 초대해주신 덕분이었다. 선물로서 이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실내가 은은한 나무로 장식된 커다란 배와 같이 생긴 월트 디즈니 홀은 아늑하여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자니 모차르트가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이 둥글게 자리를 잡고 때맞추어 각색의 소리를 내면서 음악으로 대화를 한다. 바이올린이 높은 음으로 여름을 알리니 플루트가 새 지저귀는 소리로 화답을 한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모차르트가 마차를 타고 여행 다녔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언덕으로 날아가 보았다. 멀리 있는 높은 산에는 아직도 눈이 있는데 초여름의 언덕에는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남녀들은 시원한 숲속 길을 함께 손잡고 간다. 길옆에는 에델바이스가 환영하듯 바람에 손을 흔들어준다.

그때 마침 비올라가 감미로운 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니 프렌치 혼이 은은한 소리로 받아준다. 피아노는 섬세한 손놀림으로 남녀의 속삭임을 알려준다. 주위의 나무들도 이 남녀들을 부러워한다고 오케스트라가 화답을 한다. 무뚝뚝하지만 깊은 소리로 감싸주는 콘트라베이스들은 아버지의 깊은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여러 악기들은 섬세한 솜씨를 뽐내면서 바쁘게 연주하였다. 그러면서도 모든 악기들은 지휘자의 춤추는 듯한 몸짓의 흐름에 따라 조화를 이루었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조화는 감동의 떨림으로 다가왔고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인해 콘서트홀은 흔들리는 듯하였다.

우리 몸에서도 모든 장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다. 평상시 당연하게 생각되는 조화가 깨어져서 나타나는 질병 중 떨림증이 있다. 자세히 보면 눈가의 떨림, 안면경련, 손발의 떨림 외에 목소리가 떨리는 증상 등도 있다.

눈가의 떨림은 너무 피로하거나 요즘 컴퓨터 스크린을 오래보아도 그럴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휴식을 취하고 커피를 자제하라고 한다. 안면 경련이 있는 경우에 뇌동맥이상이나 뇌종양이 드물게 있을 수 있다. 저혈당이거나 너무 지쳐 있을 때도 온 몸이 약간 떨릴 수 있으므로 이런 경우 자주 간식을 하거나 쉬는 것이 필요하다.

손이나 발이 떨리는 경우는 가만히 있을 때와 움직일 때 떨리는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힘을 주거나 움직이려고 할 때 떨리는 경우에는 갑상선 항진증, 소뇌의 이상, 아드레날린 항진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가만히 있을 때 떨리는 대표적인 경우 본태성 떨림증, 파킨슨병이 있다. 정신과 약을 비롯한 몇몇 약의 부작용으로 그런 경우도 있다, 파킨슨병에 의한 떨림은 몸의 어느 한쪽에서 먼저 시작되며, 알약을 손가락으로 굴리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며 떠는 것이 특징이다. 진행되면 불완전한 걸음걸이, 인식장애, 언어장애도 일으킨다. 파킨슨병은 뇌 안에서 도파민의 생성 및 작용의 부조화로 일어난다고 한다.


요즘 우리는 옛날 보다 살기를 위해 더 열심히 힘쓰고 있다. 그런데도 왠지 주위는 불안하고 어수선하며 갈등은 심화되어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소리가 아닌 불협화음이 커지는 것이 들린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모든 악기들이 오보에로 음을 맞춘다. 오래 전부터 오보에는 오케스트라에 항상 있었고 밝고 멀리까지 가는 소리의 특성상 높낮이의 표준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서로 음을 맞추지 않고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할 삶이 괴로워지고 있다. 조화된 삶을 위해서 맞추어야 할 우리의 절대 표준음은 무엇일까? 사랑, 배려와 헌신이 아닐까? 사랑과 헌신 없는 삶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바람이 분다.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에 동감하지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미세하게 들려오는 삶의 절대 표준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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