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이 왔네! (김옥교 / 시인)

2015-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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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즐겨 걷는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언제 피었는지 한 떼의 구군들이 희고 노오란 작은 꽃들을 앙증맞게 피워내고, 진한 보라색 자목련이 활짝 피어서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 봄이 왔네!’ 나는 탄성을 지르면서 봄의 향연에 취해본다. 봄! 얼마나 따뜻한 낱말인가.

캘리포니아는 2월이면 벌써 봄이다. 미전역이 아직 꽁꽁 얼었는데 우리는 벌써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그 냄새에 취한다. 그래서 나는 캘리포니아를 사랑한다.

봄이 오면서 마치 봄의 전령처럼 여기저기서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40이 넘도록 홀로이던 친구의 아들이 드디어 올 여름에 장가를 가게 되었다. 이 넓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찾지 못했던 평생의 짝을 먼 타국에서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진행이 된 것이다.


친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자신의 일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 아들은 누가 보아도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는데, 인연이 되려니까 파병 근무지인 베트남의 한 교회에서 예비신부를 만났다.

이런 것을 속세에서는 인연이라 하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기적, 축복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가끔 설명이 안 되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만들어 내신다. 조건만 본다면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신붓감들이 많았었는데 다 거절하고 왜 하필 그 먼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돕던 여자를 만났을까.

아무튼 이 신비로운 일을 보면서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믿게 된다. 친구는 지난 2년간 두 교회를 섬기느라 참 고생을 많이 했다. 하나님은 이 친구의 지극한 마음을 보신 것이 아닐까.

샌프란시스코 인근 이곳 라스모어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누가 ‘커피 마시러 와!’하고 전화를 하면 어디든 5분이면 달려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울타리에 사는 가족 같은 관계다.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라 여러 재미있는 글들이 이메일로 온다. 그중에 하나가 ‘백세 시대’라고 아리랑 곡조에 붙여진 가사다. 60대는 “만약 저 세상에서 나를 오라고 한다면 난 아직 젊어서 못가네” 70대는 “만약 저 세상에서 나를 오라고 한다면 난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못가네” 80대는 “난 아직 이곳이 살만해서 못가네” 구십대는 “만약 저 세상에서 나를 오라 한다면 난 내가 알아서 좋은 날 좋은 시에 가려네”라고 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마음 한구석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 역시 칠십대에 할 일이 많아서 아직은 갈 수가 없다.

늙어서 바쁘게 산다는 일은 축복이다. 더구나 우리 이웃들처럼 신나게 산다면 90을 바라보아도, 100세까지 살아도, 건강만 있다면 매일 매일이 즐거운 일이 아닌가.

어디선가 겨우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람쥐 한마리가 나타나 발밑을 포르르하고 달려간다. 다람쥐도 저렇게 살려고 기를 쓰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늙었다고 함부로 살면 안될 것 같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귀한 날들이다.

우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아름다운 봄을 맞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이 작은 순간들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꾸고 만들며 나가는 몸짓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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