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련을 이겨낸 아름다움 (김창만 / 목사)

2015-0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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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와 손연재 선수의 발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보통 여자의 발처럼 곱고 예쁘지 않았다. 박지성 선수의 발처럼 뒤틀리고, 여기 저기 시퍼런 멍이 보였다. 뼈가 다쳤다가 아물었는지 심하게 튀어나와 거칠어 보였다. 여자의 발 같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해외 전지훈련을 나가면 일 년에 수 십 개의 스케이트화를 갈아 신는다. 손연재 선수는 일 년에 가죽 슈즈를 50개 이상 갈아 신는다. 그 발이 성할 리 만무하다. 그들의 화려한 성취 뒤에는 혹독한 시련의 나날이 있었다. 그들의 발은 곱지 않았지만, 거친 시련을 이겨낸 아름다움과 자랑스러움이 있다.

줄 기러기(Bar Headed Goose)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높이로, 가장 험한 코스를 비행하는 철새다. 겨울에는 인도의 저지대에서 보내고, 봄이 오면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를 고공 횡단하여 티베트 고원의 호수 근처에서 번식한다.


일반 기러기의 비행 고도는 900미터에 불과하다. 조류의 왕자 독수리는 최고 1,000미터 높이까지 난다. 하지만 줄 기러기는 평균 9,000미터로 난다. 독수리보다 무려 9배나 높은 고도(高度)다.

줄 기러기는 왜 높이 나는가. 수십 만 마리의 줄 기러기 군락이 먹어야 할 양식과 번식지를 재빨리 확보하기 위해서다. 생존을 위해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을 직행으로 횡단하는 아슬아슬한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고도가 9,000미터 이상이 되면 대기 중의 산소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온도가 급강하한다. 대기압이 급격이 낮아져서 폐 속의 공기가 밖으로 빨려 나가는 패닉 현상이 일어난다.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줄 기러기는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는다. 힘들다고 낮은 고도로 돌아서 가는 법은 없다. 언제나 직행 코스를 정면 돌파 한다. 아무리 큰 장애물과 극한의 추위가 앞에 있어도 머뭇거림이 없다. 정공법으로 9,000미터 고공을 터널처럼 뚫고 나간다.

험난한 에베레스트 상공을 장시간 고공비행하는 줄 기러기 무리에게선 늘 고난의 흔적이 엿보인다. 온갖 시련을 이겨낸 고고하고 의연한 아름다움이다.

줄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고난과 시련은 삶의 선택 과목이 아니다. 고난과 시련은 삶의 한 부분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고난과 시련이 따른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교육시킨다.

베토벤이 혹독한 시련의 밑바닥을 헤맬 때, 가장 위대한 음악이 탄생했다. 밀턴이 눈이 멀어 시련 속에 있을 때, 실낙원을 썼다. 고난과 시련은 인간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는 양자역학적 에너지다.


고난과 시련은 변화와 도약의 길로 나가는 문이다. 줄 기러기는 동물이지만 극한을 날아 아름다움을 남기는 철새가 되었다.

초대교회를 가만히 살펴보면 줄 기러기 공동체와 매우 닮았다. 그들은 종이 한 장도 서로 맞붙잡는 끈끈한 협력정신을 가지고 어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세계를 복음화 했다.

극한의 핍박을 이겨 신앙의 모범을 세운 초대교회처럼, 극한의 에베레스트 상공을 날아 아름다움을 남긴 줄 기러기처럼, 고공비행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하겠다. 기회주의로 물든 이 시대는 그런 리더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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