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홍역과 정치인

2015-0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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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 강창욱 / 정신과의사

미국 사회가 홍역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없어졌다고 믿었던 홍역이 다시 나타나 약 20개 주에 퍼졌다고 한다.

처음 발견된 것은 몇 주 전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에서였다. 두말 할 것 없이 숨어있던 홍역 바이러스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에게 옮겨졌고 대중적 접촉이 활발한 요즘 같은 때에 극히 전염성 높은 질환이 퍼지기는 시간문제였다. 얼마 전에 에볼라 공포가 있었을 때도 전염방지에 문제가 있었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격리문제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흑사병, 호열자(콜레라), 천연두, 소아마비,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백일해, 홍역, 풍진 등을 거의 보기가 힘들게 되었고 발병환자가 나타나면 국제적 뉴스가 될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 그런 전염병을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은 철저한 예방정책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의 수명이 20세기 초에만 해도 31세였던 것이 100년 후인 2010년에 67세로 연장 되었고 세계의 인구가 1800년에 10억이었던 것이 2100년에 70억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식수처리, 오물 처리 등 공중위생의 발전과 대량으로 죽음을 가져왔든 전염병 퇴치 덕택이다. 전염병 퇴치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예방접종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현대의학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전통이라는 것이 의학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증명된 치료법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증명되지 않은 길을 찾는 수가 부지기수다.

의학이 이념, 사상, 정치에 간섭을 받는 것 때문에 관료직에 있는 의사들의 고역은 참으로 크다. 미국은 일찍부터 공중위생을 담당하는 관료들에게 법을 이행하는 관건을 주었고 군복까지 입혔다. 미국에서 국민건강의 최고 책임자인 보건위생국장은 과거 몇 년간 너무도 말이 없었다. 책임 회피와 다를 바 없다.

그런 판에 이번 홍역 문제에 정치인들이 개인의 자유 운운 하면서 예방 접종은 아기부모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해야 한다는 괴이한 주장을 하였다. 공화당 차기 대선 출마 가능이 있는 랜드 폴과 크리스 크리스티가 대표적이다.

어째서 아기의 건강을 무시하는 것이 부모의 자유란 말인가?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다. 소아과 의사들 중에는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기들의 의원 방문을 거부하는 의사도 있다. 또 많은 학교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등교를 거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일어난 이유는 영화 ‘레인 맨(Rain Man)’이 나온 후 자폐증이 한창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던 1998년 앤드로 웨이크필드라는 의사가 홍역 예방 접종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추정적인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끌기 위한 논문이었다.


그것이 예방접종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아이들의 일상적인 예방접종 특히 MMR(홍역, 유행성 이하선염, 풍진) 접종을 거부하는 가정이 늘어나게 되었다. 물론 웨이크필드의 논문은 완전히 부정되었지만 그가 말했던 기억만은 남아 있어 이것이 몇몇 정치인들의 구설에 오르게 된 것 같다.

정치인이 무식한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자유주의적 논리가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자유주의(Libertarian) 편향이 있다.

홍역 예방접종을 가장 많이 거부한 곳이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마린 카운티라고 한다. 마린 카운티는 자유주의적 이념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니 이해가 갈만하다. 증명된 건강법 보다 유행하는 건강법을 더 믿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이념과 무지를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이념과 망상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가 믿는 것을 마치 진실인 양 주장하는 것도 두렵다. 정치가가 입바르게 한 말이라면 무책임이며 그들이 진심으로 믿고 한 말이라면 너무도 두려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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