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혈육 뒷바라지

2015-02-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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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중 / 수필가

유난히 하늘의 흰 구름이 아름답던 날, 손자 앤디가 떠났다. 부모 곁으로 돌아가는 앤디를 배웅하며 작별을 했다.

앤디가 떠난 빈 둥지에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오는 것을 보면 이별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손자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나에게는 면류관을 쓴 기쁨이었고 행복한 순간들을 선사받은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은 말을 한다. 혈육의 뒷바라지는 대를 이어한다고.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내 어머니는 내 딸들의 뒷바라지를 혈압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하셨다.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손자, 손녀의 뒷바라지를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 대를 잇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딸 내외가 한국에서 사역을 하게 되어 남매를 나에게 맡기고 떠났다. 적막하던 집안에 새 식구가 입주하니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해졌고 터지는 웃음소리는 집안에 온기를 돌게 했다. 가사에 능숙치 못한 나는 가족들 뒷바라지가 즐거운 피로였으나 성실히 노력하였다. 때론 가족 뒷바라지에 집중하는 내 최선에 나 스스로도 감동을 하곤 했다.

앤디가 떠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가깝다. 그런데 아직도 해가 지면 “할머니, 나 왔다” “할머니, 나 쪼끔 배고프다” “할머니, 괜찮아”하는 앤디의 서툴고 다정한 음성이 내 귓전에 들려와 집안을 돌아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상실이다.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한 소년과 나무가 있었다. 어린 소년은 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나무 위를 오르면서 함께 놀았다. 나무는 행복했다. 소년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을 때, 여인과 둘이서 나무 그늘을 찾아와 사랑을 하였다. 두 사람이 결혼하여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 집을 만들어 주었다. 나무는 행복했다.

중년이 된 소년은 멀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 나무는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배를 만들도록 했다. 소년은 배를 타고 멀리 떠났으며 나무는 이제 그루터기만 남게 되었다. 먼 후일 노인이 된 소년은 다시 돌아왔다. 노인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노후를 보냈다. 나무는 참 행복했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밤낮을 기다리고 낮과 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하루가 흘러간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고 봄은 겨울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일 년이 흘러간다. 일 년이 흘러가서 세월이 되며 세월이 흘러가서 영원이 된다.

한 소년의 뒷바라지를 하며 기다림의 세월을 보낸 나무처럼 나도 어느 날, 앤디가 “할머니, 나 왔다” 하며 집안으로 들어설 그날을 기다리리라. 기다림 속에는 희망과 사랑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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