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스웨덴 국민들의 자랑이며 자부심인 발렌베리 가문의 유명한 모토이다. 160년의 역사와 5대째 경영을 세습해 온 이 가문이 차지하는 GDP 규모는 스웨덴 전체의 30% 규모에 해당하며 유명한 가전업체 일렉트룩스와 전투기 제조회사인 사브 통신장비 회사인 에릭슨 등 18개 주요 계열사가 차지하는 시가 총액은 스웨덴 주식시장의 40%에 달한다.
이런 거대한 기업 집단을 160년간 5대에 걸쳐 경영하고 있음에도 가문의 개인 재산은 세계 1,000대 부자에 한 번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이는 수익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설립한 공익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6대 후계를 준비 중인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 선정 요건은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 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게 함으로써 자립심과 근로의 신성함을 알게 하고 해군장교로 복무케 해 리더십과 용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한다. 그런 후 외국에서 MBA를 마쳐야 하며 세계 금융의 중심에서 실무경험을 통해 국제 경제의 흐름을 익혀야 함도 필수다.
이렇게 최소 10년이 넘는 검증기간을 거쳐 선발된 두 명으로 하여금 금융과 제조부분을 나누어 경영하게 함으로써 협력과 견제의 밸런스를 이룬다. 이러한 전통은 창업 2세대인 크누트로부터 정해져 오늘까지 지켜오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한인사회도 상당 수준의 규모를 갖춘 기업들이 많아졌으며 2세로 경영권을 물려주 거나 준비 중인 업체도 있을 것이다. 이민 1세대 창업주들은 예외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 언어의 장벽과 보이지 않은 차별을 극복하며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을 발전시킨 경영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회사는 그냥 사업체라기보다 친자식 같은 애착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가 가업을 이어 더욱 큰 기업으로 발전시켜 줬으면 하는 바란을 갖지만 현실적 어려움도 따른다.
첫째는 다른 전문 직종에 진출한 자녀가 경영에 관심이 없거나, 둘째는 능력이 부족해 경영을 맡기기 어려운 경우다. 옛날처럼 자녀를 많이 갖던 시대가 아니라서 선택의 폭이 좁고 자신도 미처 이 정도로 사업이 커질 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평소 준비가 소홀했을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조건을 수립한 크누트 회장은 “가족 경영을 변함없이 지켜나가야 하지만 단 경영에 적합한 후손이 있는 경우에 한 한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무능하거나 사업에 관심이 없는 자녀에게 회사를 맡겼다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주주와 사회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직계자녀 중에 후계자를 찾는 우리의 입장은 수백명 이상의 후손 가운데 CEO를 선 발하는 발렌베리 가문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녀에게 회사 경영을 맡겨야 한다면 발렌베리 가문이 추구하는 후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 그 중심을 통찰할 필요가 있음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많은 한인 부모들이 지향하는 자녀 교육의 목표가 훌륭한 인격보다는 유능한 인간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높음을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명학교 졸업을 목표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비싼 사립교육을 시키면서 정작 가정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라면을 끓이고 수프를 넣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가정교육의 다른 표현은 문화와 가치관의 교육이다. 따라서 집안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2세들은 죽을 때까지 부모와의 관계에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음이 엄연한 현실이다.
유대인들이 세계 어디에 흩어져 살아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건 지속적인 가정교육 때문이며 이는 자손으로 이어지는 성공의 핵심이다. 반면에 자국에서는 성공한 일본인 후세들이 이민사회에서 별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건 그들이 일본 정신을 이어 받지 못하면서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업을 승계시킬 자녀라면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가족의 소중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지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개척자 정신을 그들에게 전수한다면, 반듯이 세계인이 존중하는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우리의 후손 중에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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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