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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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단상

2015-01-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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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춘 / 시애틀지사 고문

오래 전 새내기 기자시절 ‘미란다 법’ 특집기사가 실린 시사주간지(뉴스위크)를 동료들이 돌려 본 기억이 있다. 경찰이 체포한 범죄용의자에게 변호사와 상담하기 전에는 심문에 함구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도록 의무화한 기념비적인 미국 연방법이다. 이 법의 단초가 된 어네스토 미란다는 미성년자 납치강간 혐의로 애리조나주 피닉스 경찰에 체포됐었다.

이 기억이 40여년 후인 지금도 생생한 이유는 피닉스(Phoenix)를 ‘포에닉스’로 읽어 선배들의 웃음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 뒤 백과사전을 뒤적인 끝에 피닉스가 나무 등걸에서 스스로 불에 타 숨진 후 사흘 만에 재에서 부활해 영생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불사조이며, 중세기에는 나무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를 상징했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 수퍼보울 개최지로 연일 매스컴을 타는 피닉스(경기장은 교외 글렌데일에 있음)가 그런 이름을 가진 연유도 비슷하다. 열사의 황무지인 그곳에 1860년대 도착한 백인 이주민들이 오래전 호호캄 인디언부족이 누린 번영을 부활시키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지금 피닉스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145만)를 가진 주도로 우뚝 섰다.


피닉스 때문에 겪은 옛날의 망신이 생각난 김에 온고지신을 위해 웹사이트에서 다른 예를 탐색해봤다. 엄청 많았다. 바로 피닉스 남쪽 Tucson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자동차의 SUV 이름이기도 한 Tucson을 ‘툭선’이나 ‘탁슨’으로 발음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투산’이 맞다. 애리조나 옆 뉴멕시코주의 Albuquerque는 알부쿼크가 아니라 ‘앨버커키’로 발음한다.

오하이오주의 Columbus는 콜럼버스가 아닌 ‘클람비스’로, 뉴욕주의 Chili는 칠리 아닌 ‘차일라이’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북쪽의 관광도시 La Jolla는 라졸라 아닌 ‘러하이어’로 발음한다. 서북미 아이다호의 주도 Boise는 보이즈 아닌 ‘보이지(보이시)’, Coeur D’alene은 코에르 달렌이 아닌 ‘커오디레인’, 인디애나주 Buddah는 붓다 아닌 ‘부디’로 발음한다.

Athens(켄터키, 일리노이)는 아텐스가 아닌 ‘에이썬즈’, Nevada(아칸소, 미주리)는 네바다 아닌 ‘너베이더’, Cheyenne(와이오밍)은 체옌 아닌 ‘샤이앤’, Raleigh(노스캐롤라이나)는 랄레이 아닌 ‘랄리’, San Jose(일리노이)는 샌호세 아닌 ‘샌조우즈’, Dalles(오리건)는 달레스 아닌 ‘댈즈’, Bahama(노스캐롤라이나)는 바하마 아닌 ‘버헤이머’로 발음해야 통한다.

마찬가지로 Arab(알래배마)은 ‘에이랩’, Delhi(캘리포니아, 뉴욕)는 ‘델하이’, Italy(텍사스)는 ‘이틀리’, Lebanon(뉴햄프셔)은 ‘러브넌’, Lima(오하이오)는 ‘라이머’, Milan(일리노이, 인디애나, 미시간, 테네시, 오하이오)는 ‘마일런’, Russia(오하이오)는 ‘루쉬’, Vienna(조지아, 일리노이, 사우스다코타)는 ‘바이애너’, Zzyzx(캘리포니아)는 ‘자이직스’로 발음해야 맞다.

워싱턴주에도 발음이 고약한 도시들이 많다. 맛조개 채취로 유명한 Copalis와 Kalaloch는 ‘코패일리스’와 ‘클레이록’이 맞고 Pagliacci는 ‘파울리아치’, Poulsbo는 ‘팔즈보’, Methow는 ‘멧하우’, Chehalis는 ‘셰헤일리스’, Chelan은 ‘쉴랜’, Des Moines는 ‘디모인’, Puyallup은 ‘퓨앨럽’이 맞다. Sequim과 Spokane은 각각 e를 빼고 ‘스큄’과 ‘스포캔’으로 발음한다.

약 30년전 애리조나 지국을 찾아 피닉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불볕더위에 혼쭐이 났었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은퇴 후 피닉스로 이주한 목사님은 수은주가 100도 이상 오르는 날이 연간 100일이 넘는 피닉스에서 3년간 살면서 건강이 좋아져 부활한 것 같다고 했다. 피닉스처럼 상상의 새인 시혹스도 수퍼보울의 불사조가 돼 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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